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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웹툰'죽음에 관하여'를 보았다.

보면서 '이런 웹툰이 숨어 있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1화부터 17화까지 나왔는데 그중 16화를 보고 가슴이 짠했다.

16화는 어렸을 때부터 만났지만, 훗날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들을 다뤘다.

젊었을 때는 사진을 찍으면 늘 다섯명이었던 친구들이 병과 사고로 죽으면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난다.

그러면서 사진속에서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진다.

작가는 같이 찍은 사진에서 하나 둘 없어지게 하는 효과로 그 죽음들을 표현했다.

16화뿐만아니라 나머지 편들도 죽음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평소 죽음에 대해 잘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

이 웹툰을 보고 삶과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살아있는 동안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유통기한이 과연 언제까지일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지만.


웹툰 링크 : [바로가기]


우리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일한 생각.

뉴스에 나오는 죽음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착각.

자신의 죽음은 편안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

그런 생각들을 14화에서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 웹툰 '죽음에 관하여' 14화에 나오는 장면을 캡쳐한 것입니다. 문제되면 삭제하겠습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BlogIcon 아유위 요새는 문득 살아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자꾸드네요.
    결혼을 해서 그런가..
    금전적인 부분도 더 많이 신경쓰이구요.^^

    그래도 힘내서 하루하루 화이팅 해야죠.
    좋은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
    2013.01.16 18:04 신고
  • 프로필사진 BlogIcon 이야기캐는광부 그러게요.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ㅜ,ㅜ
    저역시 그래도 힘내서 화이팅하려고 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013.01.16 18:21 신고
  • 프로필사진 BlogIcon 지성의 전당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합니다. www.uec2018.com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2018.08.03 2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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