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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금강산 여행도중 만난 북녀(北女), 그 첫인상은?

by 이야기캐는광부 201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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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화유산답사기를 담은 유홍준 교수의 책과 나의 금강산 여행기


책은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사진첩이 되기도 한다. 유홍준 교수의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노라면 더욱 그렇다.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 4권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와 제 5권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를 읽다보니 살며시 눈가에 맺히는 여행의 추억이 있었다. 그건 바로 2005년 대학교 1학년때 찾아갔던 금강산 여행. 북쪽 땅에 들어간다는 긴장감과 설레임이 섞인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남북출입국사무소에서 북쪽 직원의 검문을 끝내고 북한 땅에 들어서는 순간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북출입국사무소에서의 긴장감


북한 직원은 나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제출한 사진과 나의 얼굴을 대보았다. 이후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손짓을 하더니 지나가란다. 무섭기도 하면서 벅찬 순간이었다. 평생 가보지 못할 금강산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게 될 줄이야. 2005년도 당시는 남쪽 사람들이 한참 금강산 여행을 많이 다니던 때였다. 운좋게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신청에 싼값에 다녀올 수 있었다. 어쨌든 검문이 끝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오른쪽 옆으로 철조망이 쳐 있었다. 철길에는 북한 사람들이 검은 작업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잠시 쉬는 모양이었다. 모두가 까무잡잡한 얼굴이었다. 북한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해바다와 드문드문 보이는 북한 마을의 풍경. 가을이라 그런지 꽤 을씨년스러웠다. 북녘땅에 들어갈 때는 핸드폰 반입이 금지되었던 터라 혹시 무슨 일이 나면 어쩌나 하는 괜한 두려움도 일었다. 그래도 금강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그런 걱정을  날려주었다. 여행일정동안 콘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곳에서 잠을 잤다. 오래 전 여행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구룡폭포, 상팔담, 삼일포 등을 둘러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돌아다녔다.



▲ 평양과 금강산의 문화유산을 둘러 본 유홍준 교수님의 책들. 책을 읽다가 금강산을 여행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북한 경비병에게 고성능 카메라를 빼앗긴 한 한생


"찍지 마라우~. 찍지 마라우~"

여행도중 북한 경비병과 한 학생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찍지 마라는 곳을 카메라로 찍은 탓이었다. 그 학생은 카메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한 눈에 봐도 비싼 카메라였다. 여행을 하면서 길을 걸을 때는 권총을 찬 북한 경비병이 졸졸 따라다녔다. 그 학생이 사정사정했지만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카메라를 몸속에 숨기었다. 여행중에는 사진촬영이 허가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었다. 촬영이 허가되지 않은 곳은 경비병의 눈을 살살 살피면서 몰래 촬영해야 했다. 여행이지만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여행이었다. 


그래도 찍지 말라는 곳을 더욱 찍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도 몰래 몰래 몇 장 찍었다. 사진을 찍다가 북한 경비병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은 꽤 오싹했다. 무슨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약간의 공포도 있었다. 그래도 남과 북이 합의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금강산 여행이었기에 이내 적응이 되었다. 하루 지나고 나니 북한 경비병이 덜 무서웠다. 그래도 사진은 소심하게 깔짝깔짝 찍었다. 크크.


금강산 여행도중 만난 북녀(北女), 그 첫인상은?

구룡폭포와 상팔담을 구경하기 위해 금강산을 올랐다. 금강산은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5권에서 밝히었듯이 일반 관광객들은 내금강을 들어가지 못했다. 유홍준교수는 당시 남한을 대표한 답사단 자격으로 내금강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내금강을 둘러 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쉽지만 당시 외금강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 2005년 북한 금강산에서 담은 북쪽 안내원. 구룡폭포가기 전으로 기억한다.


중턱 곳곳에 20대로 보이는 북한 여자 안내원들이 여행지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북한 여자들은 화장기없고 꾸밈이 없었다. 또 앳대고 수줍은듯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목소리가 고왔는데,  북한 사람들 특유의 억양으로 하나하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이야기를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참! 이 글의 제목이 '대학시절 금강산 여행에서 만난 북녀'여서 무슨 즉석만남 이야기인 줄 알고 들어왔다면 죄송하다. 하하.



▲ 2005년 북한 금강산에서 담은 북쪽 안내원. 삼일포 근처였던 걸로 기억한다.


금강산 여행을 온 남한 아저씨들은 그 여자 안내원에게 노래 한 가락을 부탁했다. 역시나 아저씨들에게는 북한 여자가 단연 인기였다. 안내원이 마지못한듯 한 가락 뽑는데 노래가 참 구성지게 울려퍼졌다.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노래가 끝나자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휴전선을 두고 갈라져 있는 땅덩어리지만 이렇듯 노래 하나로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 곡 더 부탁하면 안되겠느냐는 말에 수줍은듯 웃으면서 이러다 금강산 구경 못한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 책<나의 문화유산답가기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에 실린 북한 여성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편에서 북한 여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본래 우리나라 여인들은 예쁘게 생겼다. 그런데 북녀의 어여쁨은 남한 여성들과 달리 청순미가 있고 꾸밈없는 미소가 배어 있어 내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라고 말이다. 2005년도에 내가 느낀 것하고 비슷했다. 북한 여성들은 꾸밈없는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다시 금강을 예찬하다.

유홍준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당시 구룡폭포앞에 섰던 감회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목을 뒤로 젖혀 올려봐야 할만큼 웅대한 느낌의 폭포였다. 장쾌한 모습을 사진으로 잘 담아왔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실력이 부족하여 이런 사진을 찍어왔다.


▲ 2005년 금강산 여행 당시 찍은 구룡폭포의 모습. 


책을 보면 구룡폭포에 고운 최치원의 다음과 같은 찬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나의 무지때문에 알아채지 못했다. 흑흑.


'천 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 섬 진주알을 뿌리었는가.'


또 그 옆에는 우암 송시열의 글이 행서체로 쓰여 있다고 한다. 2005년도에 보긴 본 것 같은데 누구의 글인지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역시나 나의 무식함때문이다.


'성난 폭포가 한가운데로 쏟아지니

사람을 아찔하게 하는구나.'


우리나라 3대폭포라는 구룡폭포를 당시엔 대충 둘러 보고 왔으니 지금와서야 후회스럽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금강산을 가보고 싶은데 언제 그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유홍준 교수처럼 많은 지식이 있으면 여행의 맛도 깊이 우러나는 법. 


그나저나 아쉽다. 금강산여행길이 다시 열리고, 통일이 되기전까지는 유홍준 교수님의 책을 통해 북녘의 문화유산들을 만나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금강산을 향한 그리움을 교수님의 책으로 달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이랄까.



싸이월드에 남아있던 금강산 여행의 추억들

쓰다보니 책리뷰도 여행기도 아닌 짬뽕글이 되어버렸다. 급하게 글을 끝맺어야 할 것 같다. 싸이월드에 올려놨던 사진 몇 장을 꺼내보면서.


▲ 구룡폭포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한 분.

▲ 삼일포에서 단체로 사진찍는 대학생들.


▲ 삼일포의 모습.


▲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했다는 상팔담의 모습.


▲ 잠잤던 숙소의 모습과 북녘의 저녁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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