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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이야기&노하우/아르바이트리뷰

설문조사 아르바이트하다 만난 할머니의 눈물 한 방울

by 이야기캐는광부 201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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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위해 OO읍 전통시장을 찾았다. 지역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및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설문조사였다. 주력 산업이 쇠퇴하고, 인구유입이 안되고,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활력을 잃어버린 곳이었다. 역시나 설문조사를 하러 다니다보니 6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많이 계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설문조사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이내 응해주셨다. "눈이 잘 안뵈~못하겄어."라고 말하시면, "제가 또박또박 읽어드릴게요. 선택만 해주시면 됩니다."하며 걱정하지 마시라며 안심시켰다. 눈이 잘 안보이시니 내가 직접 하나 하나 읽어드리며 설문조사를 한 장 한 장 채워갔다. 설문조사용지와 볼펜 몇 자루가 담긴 종이가방을 달랑거리며 그릇집, 옷집, 식당 등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계세요~! 어느 국밥집에서


그러던 중  전통시장안에 있는 어느 국밥집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보험금 문제와 관련하여 담담직원과 입씨름하며 전화통화중이셨다. "계세요~! " 혹시나 영업중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할머니는 전화를 급히 끊으시고 밖으로 나오셨다. 하지만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다. 

"난 또 손님이 왔다구..급한 전화도 끊었네."라고 말씀하셨다. 괜히 죄송스러웠다. 내 눈은 텅빈 식당안에서 어느 곳에 시선을 둬야할 지 몰랐다. 손님인줄알고 뛰어나왔는데 설문조사를 하러 온 청년이 멀뚱멀뚱 서 있었으니...


그래도 꿋꿋이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OO에서 나왔는데 설문조사를 해주십사하고 왔습니다. 이곳 지역발전을 위한 계획과 아이디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인데요.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머니는 이 짝에 앉으라며 설문조사 용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역시나 "아이구 눈이 잘 안 뵈...못하겄는디.."손사래를 치시길래 제가 읽어드릴테니 답변만 해주시면 된다고 두어 번 더 설득해보았다. 그래도 고개를 저으시길래 실례가 되는 것 같아 설문조사를 포기하고 일어서려는 찰나!


할머니는 자신의 고생스러운 삶에 대해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요새 가게 손님이 거의 없다며 한 숨을 푹푹 쉬셨다. 그 말을 들으니 손님인줄 알고 버선발로 뛰 어나온 할머니께 더욱 죄송했다. 할머니는 이어 자식들도 잘 안내려온다며 섭섭해 하시고, 다리도 이렇게 아픈 데 가게를 근근히 꾸려오고 있다고 토로하셨다. 다리쪽을 보니 한 쪽보다 퉁퉁 부어 있어 많이 편찮아 보이셨다. 



할머니의 눈물 한 방울에..


그때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좀 당황했다. 홀로 애써 참고 누르고 있던 슬픔이 낯선 사람을 만나자 비로소 터져 흘러 나온 것이리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는 삶의 애환이 낯선 사람을 만나니 비로소 터져 나온 것이리라. 할머니는 그동안 자신의 고충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던것이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지겠거니하고 말이다. 나는 선뜻 자리를 일어설 수 없어 할머니의 이야기를 좀 더 듣게 되었다. '세상엔 참 고생스럽게 사시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좀 지체되었다. 설문조사 목표량이 떠올랐다. 이젠 가봐야겠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미안혀..설문조사 해주어야 하는디..다른 데 가봐 잘 해줄거여.."라고 말을 건네시는 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내가 더 죄송스러웠다.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등짝이 짠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할머니의 눈물 한 방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살면서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리며, 들키고 싶지 않는 애환을 들키게 될지 모른다. 그러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슬픔을 국밥처럼 꾸역꾸역 삼키게 될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설문조사 아르바이트. 이렇게 산다는 것의 슬픔과 만날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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