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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저녁 7시 30분. 밥 먹고서 앉을 때마다 뱃살이 접히는 시간.


라푸마 둔산점 2층 북까페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명사초청 특강이 열리기 전, 오카리니스트 조은주씨가 맑고 고운 오카리나 연주를 펼치자 신기하게도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연주가 끝나고 하얀 자켓과 빨간 포켓치프로 멋을 낸 한 남자가 등장했다.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이 남자가 바로 손자병법의 대가 노병천 박사다. 


손자병법을 1만 번 읽은 노병천 박사






"만 번 읽었다고 해도 안 믿어요. 모 신문사 인터뷰에서 기자가 '수천 번'이라고 고쳐 표현했더라고요. 진짜 만 번 읽었는데. "


책 한 권 읽기도 쉽지 않거늘 만 번씩이나. 더군다나 만 번 읽은 책이 고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孙子兵法)'이란다. 국내에서 손자병법의 대가로 손꼽히는 노병천 박사는 책 한 권 읽기도 벅찬 내 가슴을 바늘로 쿡 찔렀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찔렀다. 


"하루에 3시간 씩 잡니다. 세월이 정말 빠릅니다. 금방이에요. 세월이 너무 아까운거에요."


'헉'소리가 탄식 비슷하게 새어 나왔다. 노병천 교수의 강연을 듣기위해 라푸마 둔산점을 찾은 사람 중 몇몇은 놀란 붕어 입모양이었다. 한 분야에 정통하려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은 순간.


한 분야를 꿰뚫어라


노병천 박사는 이번엔 언뜻 보면 잠자리 유충 같은 요상한(?) 생명체를 PPT로 보여줬다.







이게 뭘까? 고등학교 때 수학Ⅱ 문제를 풀 때처럼 멍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멍을 때리는 와중에도 정답을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살이!" 설마..설마...


"맞았습니다. 하루살이죠. 하나를 알아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안다는 것과 모른 다는 것은 애매한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게 하루살이라는 것을 단번에 맞췄어요. 아무리 박사라도 모를 수 있습니다."







노병천 박사는 후학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저는 후학들에게 과연 너는 생애를 통틀어 하나를 뚫었느냐고 물어봅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 우리는 살다보면 남이 봤을 때 좋아 보이는 것 있죠. 그런 것은 흉내를 잘 내요. 그러나 자기 것을 가지고 평생을 뚫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하나를 뚫으면 다 통할 수 있습니다."


손자천독달통신(孫子千讀達通神). 손자를 천 번 읽으면 신의 경지와 통한다고 했던가. 노병천 교수는 40년 전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손자병법을 처음 만났고, 최근엔 8시간 육성 녹음으로 손자병법을 해설한 무료 앱을 내 놓기도 했다. 손자병법을 만 번 이상 읽은 그의 저력이 느껴졌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말은 없다


그는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죠?'라고 질문을 던졌다.


"36계 줄행랑~", "지피지기 백전백승~"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술술 튀어나왔다. 그런데 반전.


"다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알고 있는데, 손자병법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수 는 뜻입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싸울 때 마다 이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적과 나를 깊숙이 알면 단지 위태롭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런 뜻이죠. "


나만 몰랐던 것처럼 등에 식은땀이 뚝. 캄캄했던 머릿속에는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다. 깨달음이랄까.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은 이것


노병천 박사는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을 설파했다. 이른바 '전(全, 온전할 전)'과 '부전승'(不戰勝, 싸우지 않고 이긴다)이다.


"백전백승(百戰百勝) 비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킬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이다."


영화 '록키'의 실베스타 스탤론이 들으면 머쓱해질 말이었다. 그는 영화 속에서 피터지게 얻어맞고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 싸워야 이기고 지고 결과가 나는 것이 아닌가? 아니었다.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을 하수들은 좋아해요. 이겼으니까. 그런데 싸우지 않고도 나의 인격, 실력, 하다못해 재력 때문에 상대방이 나한테 손을 들었을 때가 가장 좋은 것이죠."


여기서 '부전승(不戰勝)'라는 지혜가 나왔다. 물론 부전승은 손자병법에는 없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손자병법의 사상을 표현하기에 손색없는 단어였다.


노병천 박사는 해물파전 사진을 통해 재치 있게 파전(破全, 깨지는 것과 온전한 것)을 설명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全(온전할 전)의 깊은 뜻을 헤아렸다.


"파전(破全). 깨어지는 것과 온전한 것. 깨어져서 목적을 달성하고, 깨어져서 성공하고, 승리하면 좋지 않아요. 가장 좋은 것은 온전한 상태로 이기는 것이다. 나도 온전하고 상대방도 온전한 상태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찾으라는 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입니다. 전(全)의 사상입니다."


'전(全, 온전할 전)'과 '부전승'(不戰勝, 싸우지 않고 이긴다). 라푸마 둔산점의 맛있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다시한 번 되새기는 찰나.


노병천 박사는 손자병법의 중요한 대목으로 청중을 이끌었다.


"자보이전승(自保而全勝). 스스로 보존하면서 온전한 승리를 얻는다."


이쯤 되니 전쟁터에서 무수한 승전보를 울린 이순신, 조조, 나폴레옹이 손자병법을 찾아 읽은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총 6,109자로 이루어졌다는 손자병법. 누구나 집에 한 권쯤 가지고 있을 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 어딘가에 손자병법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것은 큰 실수였다. 꺼내 들어 먼지를 닦아내 고이 펼치고 사뿐한 마음으로 읽어야지.


손자병법이 하는 말 "어지간하면 싸우지 마라잉"


노병찬 박사는 마지막으로 손자병법에서 10가지 삶의 지혜를 뽑아냈다. 노병찬 박사는 경호원들에게 실전 무술을 가르치는 남수현 씨의 이야기와 다음 10가지 지혜를 접목시켜 설명했다.







1. 기본기를 갖춰라.

2.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3. 나만의 비밀무기를 만들어라.

4. 상대를 깊이 알아야 한다.

5. 실을 피하고 허를 노려라.

6. 주도권을 빼앗기지 마라.7. 무조건 변화하라.

8. 속지 말고, 속여라.

9. 마음으로 이겨라.

10. 어지간하면 싸우지 마라.


'어지간하면 싸우지 마라'는 대목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손자병법의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가 뜻하는 바를 잘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어지간하면 싸우지 말아야한다. 뼈 부러지고 코피 터지면 자기만 고생이니.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늘 하던 말씀이 생각났다. "싸우면 이기더라도 그래도 어지간하면 싸우지 마라잉~ 기욱아"하고 말이다. 부모가 되면 혹은 어른이 되면 저절로 손자병법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어지간히 싸우며 산다. 알고는 있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게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요. 어지간하면 안 싸우는 것이다.


부부싸움 할 때 손자병법에서 어떤 지혜를 얻을까


질문시간에 '부부싸움의 경우 손자병법이라면 어떻게 말할까요?"라는 우문을 드렸더니 노병천 박사가 현답을 내놓았다. 


"무조건 져주세요. 지는 게 이기는 겁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인지는 결혼을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다. 


어느덧 시계바늘이 9시를 훌쩍 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 어지간히 싸우고 있을 것이다. 


싸대기를 쳐올리고, 욕설을 쏟아내고, 주먹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고 할 것이다. 삶을 전쟁터라고 했던가. 직장, 학교 등 치열한 경쟁속에 전쟁터가 아닌 곳이 없다. 그렇다면 손자병법이 해줄 말은 많다. 집에 오래 방치된 손자병법의 꾹 다문 입을 여는 방법은 간단한다. 푹 쌓인 먼지를 털어내 주고 가볍게 펼쳐 보기.








 

 

사진은 이재형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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