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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때 나는 100m 육상선수였다.


그때는 도장깨기 비슷한 게 유행했었다.
이를테면 나보다 빠른 친구를 찾아가 시합을 청하기도 했고,
반대로 나도 여러번 도전을 받았다.


육상으로 도장(?) 깨기, 야크의 도전


그때는 만화 쥐라기월드컵이 유행할때라서
'야크'라는 별명을 가진 한 학년 아래 후배가 도전을 걸어왔다.





비록 초딩때였지만 다 고만고만했기에 선배고 뭐고 없었다.


다행히 당시 자존심은 지켰다.
내색은 안했지만 시합 나갔을때처럼 좆빠지게 달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면 쪽팔리니까.
창피하지만 그때 내별명은 졸라 빠른 소닉이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전학 오기전 그 학교에서 달리기 1인자였던 친구와 

봄 체육대회에서 붙었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전학오기전까지 도장깨기(?) 끝에 달리기만큼은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150m 달리기였는데 그때 그 친구를 꺾고 나는 1인자로 등극했다.


초딩의 깨달음, 1등의 자리는 쉽지 않다


같은 반 초딩 친구들은 환호했다.


"이젠 기욱이가 우리학교 달리기 1등이여~~"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내게 진 녀석이 작은 주먹으로 땅을 세게 치며 분통함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대회에 나갈때마다 이 순간을 곱씹으며 2가지 교훈을 깨달았다.


"1등의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언젠가는 2등이 되고, 3등이 되고 추락하는 순간이 있다."


그날 체육대회를 유심히 지켜본 정읍시 육상코치는 나를 정읍시 대표로 발탁했다.


도 대회에서 만난 강적


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전라북도 대회까지 출전했다. 

전주공설운동장에서 육상대회가 열렸다.

전라북도에서 난다 긴다하는 초딩 선수들이 다모였다.


그중에는 중딩같은 체구를 가진 초딩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자신 있었다. 

시골바닥에서 소똥냄새를 가르며 열심히 달려온 내가 아닌가?

정읍에서는 1등만 했던 내가 아닌가.


"땅"


100m 출발소리가 울리자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그런데 어라?


항상 앞에서 달리던 내가 이번엔 2명 뒤에 뒤쳐져 있었다.


있는 힘껏 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체격도 좋고, 다리도 긴 부안시 대표 녀석이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었다.


녀석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좆빠지게 달렸다.


결과는 3등.


육상에 대한 흥미를 잃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것이다.





감독이 다가와 그래도 잘했다고 격려해줬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육상에 대해 조금씩 흥미를 잃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승부욕에 더 불타올랐어야 하는데. )


그 부안 녀석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다.

전력질주했는데 제끼지 못하다니.

나는 상심했다.

달리고 싶지 않았다.

달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뒤로 제끼고 1등을 해야지 쾌감을 느끼는 것인데.

매번 1등이나 2등의 꽁무니를 쫓아가다보면 패배감에 젖게 된다.


내 뒤를 쫓아오던 초딩 녀석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육상을 접다


결국 6학년을 올라가던 해 육상을 접었다.


간혹 내게 육상을 겨루자며 도전해오는 초딩들이 있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누구를 이기고 싶은 마음도 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기보다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그때부터 싹 튼 것 같다.


쪽팔림과 분함, 그리고 좌절감.


그런 감정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1등, 2등, 3등을 가리는 경쟁의 허무함을 어렴풋이 느꼈던 게 아닐까.


그때는 잘 몰랐찌만.


우리는 누구나 전력질주하며 살지만...


우리는 좋은 성적을 받기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위해 전력질주한다.

옆 사람을 이기고, 뒤를 쫓아오는 사람과는 더욱 간격을 벌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전력질주를 해도 언제나 결과는 1등이 아니다. 

전력질주를 한다고 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다.

100m 달리기는 결승선이라도 있어 멈출 수 있지만,

삶의 레이스는 그렇지 못하다.


언제가 결승점일지, 끝은 있을지, 이 경쟁의 끝은 어디일지.

아득하기만 하다.


인생은 마라톤일까?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살라는 조언에 귀기울이게 된다.

내 삶의 속도에 맞춰 살라는 숱한 조언들.


초딩 때 딱 한번 800m 종목에 출전한 적이 있다.

아마 감독은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려했던 것 같다.

800m 달리기는 처음부터 전력질주를 하면 힘들다.

물론 올림픽 경기에 나오는 성인 선수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긴 하지만.


800m 달리기는 호흡조절과 페이스 조절이 중요했다.

내 속도를 유지하면서 전력질주 할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800m 역시 보통 마지막 50여 m를 남겨두고 전력질주를 한다.


그렇다면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비유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나 마라톤도 끝이 있고, 젖먹던 힘을 쥐어 짜 전력질주를 한다.


인생은 마라톤일까?

길고 힘든 레이스라는 뜻에서 자주 쓰이는 비유일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봐야 

금메달의 주인공을 알기에? 인생도 그러하기에?


인생은 마라톤? NO!


어쩌면 인생은 마라톤보다 더 긴 레이스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닌 것 같다.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페이스 조절이 어렵다.

마라톤에는 결승선이라도 있지만 인생에 결승선이라는 것도 없다.

마라톤은 많아봤자 수백명이지만

인생은 수천명, 수만명과 경쟁해야하는 구도속에 놓여있다.


대학입시, 취업, 공무원 시험 등등...


육상이 경쟁이 아닌 놀이였던 시절


초딩때 육상선수가 되기전에는 달리는 게 제법 즐거웠다.

공중에 붕 뜨는 기분, 바람을 가르며 머리칼을 휘날리며 

아무 생각없이 달리는 기분, 정말 좋았다.


시골 동네에서 친구, 동네 형들과 계주를 하며 쥐포 내기를 했던 시절도 좋았다.

그때는 육상이 아니라 뛰어 노는 것이었다.

1등이 목표가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흰 색 레이스가 그려진 100m 출발선에 서면서부터

달리는 것은 즐거움에서 멀어져 갔다.


초딩때는 인생은 그저 재밌게 뛰어놀면 되는 것이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는 매일 100m 출발선에 서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며 살 때가 많다.


우사인 볼트는 나의 이야기에 동감할까?

웬지 아닐 것 같다.ㅋㅋㅋㅋㅋㅋ



우사인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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