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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에세이/직딩라이프

정처없는 여행길, 어디로 흘러가든 냅두리라

by 이야기캐는광부 201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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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을 하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멀리 능선이 우리네 인생의 굴곡처럼 보인다.

내게는 열정의 굴곡이 맞겠다.

자신의 삶을 멀찌감치에서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아직 삶은 뒤돌아 것도, 굴곡도 많지 않아 때론 밋밋한 풍경이다.

정상을 찍어 적은 없고 산허리를 따라 돌아다닌 느낌이다. 

가시에 찔리거나 꽃을 밟거나 나뭇가지에 부딪히거나 돌부리에 발이 걸린 정도.

때론 무릎이 까지기도 마음이 까지기도 했다 능선 너머 희뿌연 하나의 능선.

뒤에 엷은 한산 세모시같은 능선. 

너머로 아주 희미한 어린시절.

옆에 뭉개진 턱선 같은 능선.

하늘과 닿아있는 능선들, 삶의 굴곡들.

달리는 기차안에서 해를 마무리한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기차에 올랐다.

눈은 쌓이지 않았으나

기차는 눈을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

뽀드득 덜컹 찰캉 덜컹 뽀득.

나이를 먹는다. 실제로 음식인냥 먹을 있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나이를 소화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로봇에 올라 우주 곳곳을

싸돌아다니는 상상을 한다.

남원에 들렸다. 춘향이의 마을. 

남원 시내를 걷다가 경운기 발견. 도심에 경운기가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도시의 느낌이 정읍과 비슷하다.

중국집 '한성'에서 짬뽕을 먹었다.

자그마한 중국집인데 사람이 붐비더라. 그래 여기야. 아점을 먹으러 들어갔다. 

짬뽕맛이 죽여줬다. 국물까지 후루룩.

검색해보니 남원의 맛집으로 나온다. 중국집과의 즐거운 인연.

역시 여행자의 촉이란 무시 못한다.

거리를 나와 어디로갈까하다가.

남원 유일의 게스트하우스라는 '뜰아래'로 향했다.

한옥집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전통찻집이다. 숙박도 가능하다.

입구로 들어서 두리번 두리번 하는 찰나.

사장님이 나오셔서 안내해주신다.

국화차를 시켰다. 국화 꽃잎이 동동.

햇살이 비추는 곳이라 '뜰아래'라 이름붙였단다.

계획없이 떠난 남원. 그저 발길 닿는대로 가는 여행.

연말 친구와 술을 먹을까하다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따가 어디로 가야하나.

그냥 집에 갈까. 곡성, 순천을 가볼까. 옆동네 지리산을 가볼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참, 뜰아래로 가기전 '메가박스'를 발견했다. 영화관인데 개인 주택 느낌이다. 이런 모습의

영화관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햇살에 반짝이던 구름도 물러가고

어느덧 오후 4시 30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국화차는 다 먹어가고

솟아오른 뱃살.

토요일의 오후는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그래도 좋다.

이런 느낌, 이런 자유.

앗 고양이 발견. 지붕 틈 사이를 휘젖고 다니네.

열정과 호빵. 식어가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

열렬하지 않은 30대 초반.

잿더미가 아닌 바람부는대로 활활 타오르고 싶은 화롯불.

자취방에는 아직 그대로. 씽크대에 널려있는 분홍 고무장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설거지처럼 쌓이는 걱정과 후회.

깨끗이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얼굴의 점.

떼어낼 수 없는 시간의 덫.

숨을 쉰다고 코딱지가 되지 않는.

주절주절. 한 해의 마지막날에서 새해 첫날 사이에 먼지처럼 끼어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행'이라 이름붙인 빛좋은 개살구.

'여행'이라 이름붙인.....빛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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