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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베르니나 열차를 타고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중략>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 신자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콜을 사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일단 사용하고 나서 목표에 도달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 썼던 싸닥다리를 발로 밀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멀미 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다른 그 무엇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내가 나 자신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장그르니에의 <섬> 95~98쪽-




이 책을 처음 펼친 때는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다녀온 후이다. 7박 9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자취방 침대에 누웠을 때,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았다. 반복적인 삶에 낯선 풍경하나가 더해졌다. 그 풍경은 시도때도 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집에 돌아왔을 때, 잔뜩 때 낀 가스레인지와 먼지로 뒤덮인 밥통, 썩은 음식들이 있는 냉장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자취방도 똑같은 모습을 한 주인(?)을 맞이했다. 물론 겉모습은 똑같을지 몰라도 내면의 풍경은 달라져있었다. 자취방에 비행기 날개가 솟아 나기를, 구름 위를 날아다닐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어린 시절 상상을 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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