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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2017 독서노트(62) 김애란 <바깥은 여름>

by 이야기캐는광부 201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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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의 소설집<바깥은 여름>. 그 중 단편<입동>. 처음엔 새 집을 구한 부부의 이야기, 우리 네 삶의 소소한 풍경을 그린 소설인 줄 알았다.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어떨떨했다. 명의만 내 것일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가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그래도 나쁜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 했다.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그나마 나은 불안을 택한 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이었다.

-<입동> 13~14쪽-


그런데 <입동>은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설속에서 부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숨졌다. 그러면서 무언가로 가득채워져 있어야할 집은 그야말로 공허함으로 바뀌고 만다. 우리가 살면서 어쩌면 누구나 맞닥드릴 수 있는 주체할 수 없는 허공. 공허함. 깊은 상실. 죽음. 이것들과 마주할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삶은 예고없이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 우리를 베고 붉은 피와 같은 슬픔을 뚝뚝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 이사 오고 참 좋았는데, 당신도 그랬어?

-어.

-우리가 살아본 데 중에 제일 좋았잖아. 그렇지?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 우리 분수에 이 정도면 멀리 온 거라고. 욕심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 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하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입동> 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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