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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이 4년만에 시집을 냈다.  청년, 중장년, 노년. 크게 셋으로 나뉘는 삶. 문득 문고리를 열어 들여다보고 싶은 노년.  아직은 흐릿한 풍경.



노년  / 이병률 시인


어느 날  모든 비밀번호는 사라지고

모든 것들은 잠긴다


풀에 스치고 넘어지고

얼굴들에 밀리고 무너지고


감촉이 파이고

문고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는 오랜 빈집을 전전하였으나

빈 창고 하나가 정해지면 무엇을 넣을지도

결심하지 못했다


돌아가자는 말은 흐릿하고

가야 할 길도 흐릿하다


오래 교실에 다닌 적이 있었다

파도를 느꼈으나 그가 허락할 만한 세기는 아니었다


서점 이웃으로도 산 적이 있었다

경우에 다라 두텁거나 가벼운 친밀감이 스칠 뿐이었다


오래 붙들고 산 풍경 같은 것은 남아 있었다


중생대의 뼈들이 들여다보이는 박물관 창문 앞을 지나 가는 길

늘 지나는 길인데

보내고 보대고 또 보냈을 법한 냄새가 따라붙었다


'여기'라는 말에 홀렸으며

'그곳'이라는 말을 참으며 살았으니


여기를 떠나 이제 그곳에 도달할 사람




살림 / 이병률 시인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고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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