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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독서노트(82)세탁기와 빨래, END.

이야기캐는광부 2018.08.08 00:01

띠.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 띠리리리.


세탁기는 빨래가 끝났다는 걸 소리로 알려준다. 친절하게 'end'라는 단어도 표시해준다. 


오늘도 역시 하루의 시름과 고됨과 우울을 세탁기 속으로 벗어던진다. 슈퍼타이를 넣고, 샤프란을 세제함에 채운다. 덮개를 닫고 전원버튼을 누른다. 동작버튼을 꾸욱. 하루의 시름과 고됨과 우울을 몇 번 흔들면서 세탁기는 이들의 무게를 잰다. 물을 얼마만큼 부어야할지, 몇 분동안 빨래를 돌려야 할지 판단한다. 차가운 물이 흘러들어온다. 바지와 팬티와 양말, 수건이 젖는다. 베란다 불을 끄고 책상 앞에 앉는다. 


웨웨웽. 웨웨웨엥.

웨웨웽. 웨웨웨웽.

들컥. 딱. 

부르르르르르쏴아아아.


세탁과 탈수. 과연 깨끗해졌을까. 구겨진 바지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름과 고됨과 우울. 


띠.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 띠리리리. 빨래가 끝났다. END.


빨래를 꺼낸다.

베란다로 가져간다.

툭툭 세게 털고 널어놓는다.

이미 마른 바지 옆에.

이미 마른 팬티 옆에.

이미 마른 양말 옆에.

이미 마른 수건 앞에.

뜨거운 여름 날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며

나의 시름과 고됨과 우울은 조용히 새벽을 기다린다.

살며시 흔들리며

내가 여기 있다는듯이

반쯤 감긴 눈으로 바라본다.

어둠과 두려움과 불안감이 섞인 천장의 모퉁이를 응시한다.

END가 아닌 RESET. 

RESET이 아닌 RESTART.

재복이 아닌 반복.

동작 일시정지 버튼이 없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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