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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리뷰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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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띤 강연을 해주신 최염순 대표님


이번 글제목을 보고 혹시나 우리 어머니께서 놀라시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은 유서가 아니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 한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3월 24일, 카네기연구소 최염순 대표님의 강연을 들으며 재차 내 가슴에 던진 질문이다. 대표님은 죽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한번쯤 고민해보라고 한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들고, 찡그리고, 울고, 웃고, 화내는 나라는 존재.


나는 과연 죽으면 어떻게 기억될까? 농구의 버저비터 슛처럼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삶으로 기억될까? 길거리에 나뒹구는 찌그러진 캔처럼 그저 빈 깡통깥은 삶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어느 통계수치에 나올법한 숫자 하나로 기억될 뿐일까? 아니면 바람처럼 흔적도 색깔도 없이 사라진 하나의 목숨정도로 기억될까? 아니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거룩하게 기록될 것인가?

                                         ▲ 열띤 강연을 해주신 최염순 대표님

아니면 끓는 물에 흩어지는 라면스프처럼 누군가의 코 끝을 맵게 할 정도일까? 아니면 콧구멍속의 코딱지처럼 얼른 파내고 싶은 귀찮은 존재였던 걸로 기억될까? 내일을 준비하듯이 언제가 있을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사실 얼마남지 않은 20대를 살고 있기에 죽음보다는 생동하는 삶에 더 큰 관심이 간다. 그래서 오늘을 낭비하기 일쑤이고, 내일은 그져 보너스처럼 계속 주어질 것이라는 안일함에 기대어 살아간다. 오늘 하지 못한 일을 내일로 미루며 게을러진다. 죽음도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뒤로 미룰 수 있을까? 죽음이 닥쳐오는데 그 죽음도 내일로 미룰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저승사자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죽음도 빨리 빨리 처리할것 만 같다.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내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될까? 혹시 모르니 곰곰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선 뜻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이런 묘비명부터 생각해 본다. 묘비명은 내가 짓는 것인지, 남이 지어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다음과 같이 작성해 보았다.

<묘비명 1안>
김기욱,
세상 따뜻한 이야기를 글로 옮기며,
갓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 처럼 뜨끈뜨끈한 삶을 살다.

이건 어떨까?

<묘비명 2안>
한 평생 사람의 가치를 글로 기록하며 즐거워했던
이야기캐는 광부 김기욱 여기 잠들다

뭔가 밍밍하다.
훗날 내 자식들이 묘비를 세워 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벌써 설레발을 치고 있다. 게다가 묘비를 세울 만한 위인이 될지 안될지도 알 수 없다. 대놓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 볼까?

<묘비명 3안>
그저 괜찮게 살단 간 것 같은 김기욱,
한 줌 흙이 되어 여기 잠들다

죽는 순간까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모를 것 같기에 지어 본 묘비명이다. 아니면 아예 확 줄여 이렇게 바꿔 볼까.

<묘비명 4안>
김기욱, 간만에 숙면을 취하다

개인적으로는 묘비명 2안에 마음이 간다. 이 묘비명들속에 죽고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이 조금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싶다. 한 평생 사람의 가치를 글로 기록하며 즐거워했던 이야기캐는광부로 기억되고 싶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할지는 모르겠다.

더불어 나를 오래도록 기억해 줄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죽어서도 이불을 덮은 것 처럼 따뜻하지 않을까? 어느 한 사람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죽어서도 사람의 체온 36.5도가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다.



<다음뷰 베스트 글에 선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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