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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지긋하신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편지를 쓰는 일이 드문 요즈음, 자신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이번이 두번째로 받는 편지인데, 그 하얀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따숩게 적혀 있었습니다.



" 3,4학년은 보다 실감있는 시간과의 전쟁이 필요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루에 한 차례라도 꼭 해보시길 권합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있어요.15년도 넘어요. 나를 돌아보면서 오늘에 충실하자는 다짐입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입니다."

                                                                                              - 교수님 편지 내용 中에서 -

교수님께서는 정말 15년동안 일기를 써오고 계십니다. 예전에 직접 그 일기장을 본 적이 있는데 깨알같이 하루에 한 면을 가득채워 일기를 쓰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교수님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계신거지요.


그걸 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바쁜 대학생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않고 주변 상황에 휩쓸리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토익, 학점, 봉사활동 등 각종 스펙(?)에만 신경을 쏟고, 오히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가슴 깊이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도 함께 말이죠. 내가 원하는 건 뭐고, 내 꿈은 뭐였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일기를 손에서 놓은지도 꽤 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남겨둔 것 없이 너무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아 허무하기도 합니다. 대학교 신입생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년이면 4학년이 됩니다. 이제는 바쁘지 않아도 바쁜척을 해야하고, 곧 다가올 설날이 또 다시 두렵기도 합니다. 명절때만 되면 어른들은 항상 이렇게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너 뭐 준비하고있냐? 공무원? 공사? 언론?"

그러면 저는 머뭇거립니다.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손치더라도 제 입밖으로 내어 말하기에는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아니 싫기 때문입니다. 그 부끄럽다는 건 친척들에게 보이기에 부끄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내 자신을 향하여 부끄럽다는 뜻입니다. 고등학교때만 하더라도 나만의 꿈을 꿨던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시간이 흐르자 남들이 다 꾸는 꿈을 똑같이 꾸고 있는 점이 말이지요. 물론 그 '남들이 다 꾸는 꿈'을 낮추어 보는 건 아닙니다.

더불어 나의 미래를 정해놓고 무엇인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모습을 친척과 같은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불편함이 싫습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듯이 "저는 지금 000을 준비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불편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고 있고, 진짜로 내 꿈이 무엇인지'를   대답하는 일에는 자신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설날 때 마다 물어보려면 바로 ' 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거, 하고싶은 거, 네가 진짜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그런 질문을 한번도 하지 않고 오로지 좋은 대학에만 가라고 했던 어른들. 대학생이 되어서도 "너 뭐 준비하고 있냐" 라고만 물어본다면 가슴이 갑자기 공허해는 걸 아시는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교수님의 편지를 들여다봅니다. 편지에는 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코 앞의 일에 전전긍긍하지만 말고 멀리 앞을 보라는 것입니다. 큰 그림을 그려 좋은 계획이 서 있으면 하는 일도 즐거워 능률이 오릅니다. 목표가 있으면 하는 일에 힘이 들지 않습니다. 다른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누구엔가 말을 걸고 돕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교수님 편지 내용 中에서 -

바로 앞의 취업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누구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확실히 세우고 매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또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 자신이 바로 코 앞의 일에만 너무 힘과 정신을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직장'이라는 목표 너머의 목표, 다시 말해 고도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꿈 너머 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그 직장에 들어가서도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어떠한 꿈을 꿀 것인가하고 말이지요.

주변 선배들을 보면 막상 직장에 들어갔어도 1년만에 때려친 사람도 있고, 자기와 적성이 맞지 않아 어려워 하고 있는 모습도 종종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또 다시 이상하리만치 미래에 대해 막막한 기분이 듭니다. 다시 머릿속은 백지상태가 됩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의 다음 편지글에 힘을 얻어 봅니다.


"언젠가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보고 싶으면 연락을 주기 바랍니다. 기댈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타게 됩니다. 또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다 보면 새로운 힘도 나게 됩니다.
추운 날씨에 몸 건강하고, 기말고사, 취직시험 준비도 착실히 하기 바랍니다."

                                                                                              - 교수님 편지 내용 中에서 -

아, 교수님의 편지 한 장으로 힘을 얻습니다. 분명 스승의 따뜻한 한 마디와 진심어린 걱정이 88만원 세대라고 불리우는 우리 대학생 청춘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채찍질이든 애정어린 충고든 그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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