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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소설가 오정희씨의 산문집 제목이다. 토요일에 역시나 침대에서 뒹굴며 읽었다. 평소에 잘 안읽던 산문집을 읽은 건 아마도 작가를 통해 내 삶의 무늬를 어루만지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깨달음들이 진중하고 깊게 녹아있는 오정희씨의 이 산문집!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라는 유재하씨의 노래제목처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나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책에 담긴 '시간의 얼굴'이라는 글이 유독 마음을 붙잡았다. 작가가 20대, 30대, 40대, 50대로 접어 들면서 그녀의 마음에 부딪혔거나 소용돌이 쳤던 깨달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역시나 20대인 나의 가슴을 휘어잡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작가가 20대를 겪고 나서 깨달은 안쓰러운 청춘의 모습이다.

하룻밤에 일생의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지만 정작 하루의 계획은 실행하지 못하고 창조적인 삶, 불꽃처럼 뜨겁고 치열한 삶을 원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젊음이 주체스러운 한편 준비 없이 맞을 미래에의 두려움,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소모하고 있다는 초조감에 쫓기는 시절, 그 나이를 이미 지난 사람들은 '희망과 가능성으로 푸르디푸른 아름다움'이라 의심없이 말하지만 삶의 실체는 잡히지 않는 채로 점차 생활인, 사회인으로서의 책무,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안팎의 요구에 시달리는 20대의 생과 사랑은 얼마나 외로운가.

- 36쪽, <시간의 얼굴>이라는 글에서-



어쩜 이리도 나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을까. 한번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작가이지만 어찌도 이렇게 마음을 울리고 있을까. 현재의 내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듯해서 놀랍기도 하고 들키면 안될 것 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나만 이런 느낌을 가지고 산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 역시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20대에 한번쯤은 이런 시간이 찾아온다.
하룻밤 사이에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아침이 되면 햇살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준비없이 맞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중요한 시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불안함도 든다.
무언가 빛나는 결과를 내고싶은 초조감도 매번 찾아온다.
장남으로서의 책무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인으로서의 책임감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지나고 나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20대 청춘. 
그 아름다움을 피워 내기 위해서, 그동안 '청춘'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수많은 꽃들은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했던 것이 아닐까. 
이 꽃이 무사히 잘 필까, 짓밟히지 않을까, 나의 삶또한 아름다울 수 있을까, 화려할 수 있을까하는 숱한 번뇌에 사로잡히면서.

나도 20대가 지나면 20대를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회상하게 될까. 40대에 들어서는 30대에 대해서, 50대에 들어서는 40대에 대해서 어떤 시절이라고 회상하게 될까. 그리고 죽기전에는 인생의 어느 순간을 아름답다고 여길까.


한편, 저자가 30대, 40대에 느꼈던 것을 토해 낸 문장들은 내가 그 나이가 되고나서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하나 하나가 삶의 연륜이 느껴지고, 오랜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내가 이 산문집의 모든 문장들을 읽었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속뜻 전부를 헤아리지는 못했다. 책을 읽고도 온전히 체화시키지 못했음이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도 아직 남은 생애동안 차츰 깨달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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