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토리텔링연구/스토리텔링노하우

<영화감독열전 오우삼 2탄> - 추락하던 오우삼, 주윤발이라는 구세주를 만나다



다음 글은 대학교시절 오우삼감독에 관한 레포트로 썼던 것을 다시 편집한 것입니다. 책을 비롯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습니다.^^




 


1. 청년 오우삼, 본격적인 영화공부를 하다
 

청년 오우삼. 그는 청년기에 들어 영화를 향한 열망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데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우려 했던 1960년대 홍콩에는 영화학교가 없었다. 게다가 부친의 죽은 뒤로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일자리를 구해야했다. 그는 <Chinese Student Weekly>라는 신문사에 취직하여 시, 미술, 철학 등 몇 가지 분과로 나뉘어진 모임을 갖게 되고, 이 모임에서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분석하면서 지식을 늘려나갈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영화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오우삼과 그의 친구들은 유럽영화, 일본의 예술영화, 실험영화들을 좋아했지만 1970년대부터 유럽영화는 몰락해갔고, 대신에 미국영화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오우삼은 그의 평생 스승이라 할 수도 있는 샘 페킨파, 프란시스 코폴라, 스탠리 큐브릭(StanleyKubrick)과 같은 감독들의 영화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은 오우삼과 그의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감독이었다. 오우삼은 그 중에서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라고 말한다. 또 
오우삼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소설을 좋아했다. 그의 영화에서 풍기는 동양적 비장미는 여기서 비롯된 것 같다. (필자도 고등학교시절 미시마유키오라는 작가를 좋아했다. 그의 소설 '금각사'에서 금각사가 불타는 장면을 보고 왠지모를 공허감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또한 그의 청년기를 고뇌에 차게 했던 건 당대의 현실상황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의 홍콩은 다른 어떤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기였다. 공산당원과 국민당원의 충돌로 촉발된 두 번의 대규모 시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갱들의 세력다툼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오우삼은 당시를 회상하며 "히피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제가 살고 있는 사회와 전쟁에 관해 항상 고민했고 반전시위에도 참여해봤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런 지적인 풍토에서 성장한 그와 친구들은 당시의 홍콩영화계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여러 잡지에 기고했다. 그러다 보니 홍콩 영화계에 여러 적들을 만들어 나갔고,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오우삼과 친구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항상 자신들이 홍콩영화계를 송두리째 뒤바꿔버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물론그 당시 친구들 중에서 지금까지 영화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오우삼을 비롯해 몇 명되지 않지만!
 

    

여기서 잠깐! 영웅본색의 주제가인 '당년정'을 틀어놓자. 눈치챘겠지만, 오우삼과 주윤발의 운명적인 조우에 대한 이야기가 곧 시작되려고 하니 말이다.!!



2. 오우삼 , 주윤발이라는 구세주를 만나다.
 
오우삼 감독은 1975년 <철한유정(鐵漢柔情)>으로 데뷔하였다. 이 영화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자 그후 10년간 골든 하베스트[嘉禾電影公社]에서 <부자에서 알거지로 From Riches to Rags>(1977), <플레인 제인 구조에 나서다 Plain Jane to the Rescue>(1982), <소장(笑長)>(1984) 등의 코미디 영화를 찍었다. 그가 어울리지 않게(?) 코미디 영화를 찍었다는 게 놀랍다. 하지만 오랜 시간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인생엔 세번의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에게도 한 번의 큰 기회가 찾아왔다. 

그의 영화인생은 코미디가 아닌 비극이 될 뻔하였으나 주윤발이라는 복덩이 배우가 혜성처럼 등장하며 영웅본색 시리즈를 탄생시키게 된것!!! 

오우삼은 그때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윤발아 그 때 어디 갔다가 이제왔니?ㅠㅠㅠ’

그런 오우삼감독을 위해 주윤발이 당시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었는자  들려주겠다.ㅎㅎ^^;;



정작 오우삼 감독보다 더 궁금한(^^;) 영화배우 주윤발은 1955년 5월 18일 홍콩의 라마섬에서 태어났다. 1965년 홍콩으로 이주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집배원·외판원·웨이터 등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1973년 친구의 권유로 텔레비전 방송국의 탤런트 양성소에 들어가면서 연기활동을 시작하였다. (길게 말하려네 숨이 차다. 딱 봐도 주윤발도 처음엔 순탄치 않은 청춘을 보냈다.)
 


 
그 이후 2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활발히 출연하며 그의 시대를 조금씩 열어가기 시작한다.1984년에는 <등대여명>의 주연을 맡아 이듬해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로 이름을 굳힌다.




그러다 드디어 1986년엔 오우삼 감독과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웅본색>을 찍는다. 그는 영화속에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의리를 지키는 비극적인 주인공역을 맡게되고, 홍콩 느와르를 향한 뜨겁고 화려한 열풍을 몰고 온다. 


캬~이 장면은 언제봐도 멋지다!!

(갑자기 주윤발 이야기로 새버렸다.^^; 다시 돌아와서~에헴~흠.)

오우삼은 드디어 자신의 페르소나를 찾게 된 셈이고, 주윤발이라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그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 간다. 게다가 영웅본색 2까지 흥행에 성공하게 되며, 그야말로 영화감독으로서 힘찬 날갯짓을 시작한다. 어떻게??

푸드덕, 푸드덕!^^;




주윤발의 영화들은 필자의 초딩시절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영웅본색!!!
초등학교 5학년때 친구의 집에서 처음 봤는데, 머리에 피도 안말랐던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나와 내 친구들은 주윤발을 따라 한다며 입에 이쑤시개 하나씩 물고 돌아댕기다 잇몸이 긁혀 피가 나기도 했었다.

친구가 옆반 아이들에게 맞고 오면 피끟는 의리를 앞세우며 복수를 해주기도 했고, 내가 맞으면 그 친구가 쫓아와 복수를 해주었다. 물론 상대가 싸움을 잘한다 싶으면 복수는 금새 내평개쳐지기도 했지만..^^;

어쨌건....오우삼 감독은 주윤발이라는 복덩이를 만나면서 인생 2막을 연다...





<3편 계속에서 계속됩니다....>


 

<참고자료>
1. 단행본
  중국영화에 반하다, 이종철 지음, 학고방, 2008
  중국영화의 거장을 말한다, 이종철 지음, 학고방, 2008

<사이트>
  www.movist.com(무비스트)
  http://movie.naver.com(네이버 무비)
  http://windshoes.new21.org(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 3편 궁금합니다. 얼른 올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입니다 ㅎㅎ
    사실 저보다는 제 윗세대들이 주윤발에 더 열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창 주윤발이 인기일 때 너무 꼬꼬마였던지라.^^;
    당시 시대분위기 등은 하도 들어서 잘 알고 있지요.
    오우삼 감독 최근 영화들은 사실 미션임파서블2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게 없어 안타깝지만
    아시아에 이런 감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