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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이야기&노하우/수능의추억

대입재수이야기(1) - 대학교 자퇴결심을 부모님께 말하던 날


다음 글은 어찌어찌하다가 수능을 세 번 보았던 내 청춘의 이야기다.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실패담 혹은 에피소드에 가깝다.




"어머니..저...할 말 있는데요.."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3년 여름,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 똥줄이 탔다. 아버지는 TV를 보시느라 거실에 누워 계셨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끝내시고 내 방에 들어와 방바닥이 더럽다며 잔소리를 하시는 중이었다.


"무슨 할 말?"

"그게..저.."


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귀신같이 알아채셨다. 동정심을 구하는 의도된 표정이긴 했지만.


"너.. 무슨 일 있구나..빨리 말해봐.."





최대한 우울한 표정으로 말씀드리면서, 어머니의 표정을 재빠르게 훝었다.


"저..학교...자퇴하고 싶어요..적성도 안맞고...등록금도 비싸고.."

"뭐?...후,,(한숨) 그걸 말이라고 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버지한테 먼저 말을 했다면 귓방망이가 날라왔겠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대화하려고 애쓰셨다. 


"이놈의 자식아..멀쩡하게 다니다가 왜 그만둬..뭔 일 있는거야?"

"말씀드렸잖아요..적성도 안맞고..또.."



어머니는 계속 한 숨을 쉬시더니 방을 나가셨다. 나는 내 방에 덩그러니 찬밥처럼 남겨졌다. 엎질러진 물, 싸질러 놓은 오줌이었다. 1시간쯤 흘렀을까. 사자후가 거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놈의 자식 나와와와와왓!!!!!"






두둥. 드디어 소환명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셨던 것이다.(이것도 의도된 것이었다.)직접 말하면 타격이 크니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께 내 의사를 전달했던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말도 다하기전에 화부터 내시고 바로 귓방망이가 날라올테니깐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필요했기에.^^;


"뭣이 어째? 자퇴?..이놈의 새끼야 어떻게 등록금을 마련한건데..공부나 할 것 이지..죽어라 공부해도 모자를 판에..."

"...."

"그러니까 고등학교다닐 때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이제 와서 ..이놈의 시끼가,...블라,,블라,,블라.띠..띠 xx.

블라 블라 블라 왈라셩 블라 .....이놈의 시끼가....아오..확...이걸 그냥...아오,....흑흑,....휴,,,하...이걸 그냥"


아버지의 따발총 연설(?)이 시작되었고, 그 말들이 가슴에 훅훅 총알처럼 박혔다. 나는 무릎을 끓은채 끽소리 하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저놈의 책 다 불질러 버려.."


거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다 불질러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고등학교때부터 교과서와 관련된 책은 안사고 어믄 책만 많이 보았었다. 학교성적은 계속 내려갔고, 아버지께서는 그런 내가 못마땅하셨나보다. 재밌게 읽었던 보물같은 책들을 불태우라는 말씀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떨군채 끽소리 못했다.


"불질러 버리라니까...."


그 와중에도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화가 나셔서 그런 걸꺼야. 여기서 불태우면 집 한채 날라갈텐데..저 많은 책을 옮겨서 야외에서 불태워야 할텐데..아버지가 직접 그러실 일은 없고..어떻게든 이 순간을 모면하자....제발..제발..'


아버지는 불질러버리라는 말을 몇 번 계속하시다가 베란다로 나가셨다.

아버지의 뒷모습 너머로 담배연기가 힘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 후로 몇일간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냉기가 흘렀다.

..

..

..




..

..

..


몇 일 후 아버지는 소주 한잔을 하자며 나를 불렀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아직 화가 안풀리신듯 했다. 

나는 어머니의 코치대로 아버지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아버지,...저 ..재수하겠습니다."

"흠.......하...후...............................알았다.."


아버지는 계속 소주를 따라 마셨다.

새로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부모님은 그때 빚을 내서 내 등록금을 마련하셨다. 사립대학교였기때문에 등록금도 만만치 않았고, 생활비와 기숙사비를 합치면 들어가는 돈은 무척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자퇴결심을 이야기하고 여름방학이라 썰렁했던 대학교 캠퍼스를 찾아갔다.


스무살의 여름은 내게는 겨울이었다. 자퇴서를 낸 순간엔 몰랐다. 앞으로가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재수 이야기- 대학교 자퇴서를 내던 날>편에서 계속됩니다.






  •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재수를 결심하셨군요.
    인생의 전체를 생각해보면 재수도 거쳐가는 과정이지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저도 자퇴한 입장이라.,... 빚을 져가면서 마련한 등록금 떠올리면 아직도 죄송스럽습니다. ㅠㅠ

  • 비빔냉면>.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

  • 반수생 2013.02.11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화 재밌습니다~~ 계속 끝까지 볼게요 ㅋㅋ

  • 우연히여기들어옴! 2013.02.16 1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연히 여기 들어왔는데... 재미있는 글 보고 갑니다.. ㅋㅋㅋ
    저도 기숙학원 재수로 부모님 돈 써가며 재수했는데도 성적이 많이 안올라서
    점수맞춰 대학에 갔다가..만족감이 안들어서 군대를 바로 가서 며칠전에 전역했는데...반수준비중입니다
    정말 죄송한 기분.. 님도 저보다 인생선배이셔서 잘 아시리라 생각되네요
    예전에 기숙학원 있을때 어떤친구가 "여기 10개월 있을돈으로 케이파이브 한대 뽑겠다ㅠ" 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ㅋ
    이야기 풍부한 블로그.. 즐겨찾기 해놓고 종종 와서 볼께요 ^^

  • 우연히 2013.08.31 1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황 끝에 우연히 찾아왔네요^^ 저는 고등학교 재수 후 대학 재수는 할수가 없어서 현역으로 지방 사립에 들어가서 '저런 학교에 왜 등록금을 갇다바치지?' 이런 생각으로 편입에 돌입, 상위권에도 불구 올킬, 다시 편입재수하고있습니다. 부모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하네요^^ 그렇지만 저는 부모님도 미련해보이는게 여기나와서 대졸자 취급도 못받는데 왜 굳이 돈을 들여서 여기를 졸업시키려는지 모르겠네요.. 멀쩡하게 잘 다니는 친구들도 있는데 성격이 좋으면 안좋은 학교 나와도 인생이 잘 풀리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서 죄송할 따름이네요. 차라리 일반고에서 어중간하게 지방대갈바에는 차라리 유학가서 특례입학이 더 나은거같아요.

  • 예전 글이지만 댓글 남겨봐요ㅋㅋ저도 아주아주 비슷한 상황에서 자퇴를 하고 재수중입니다ㅋㅋ그런데 저는 별로 대학에 뜻이 없어서(우리나라에서는요) 힘들어요ㅠㅠ자퇴할땐 핑계거리가필요하니까재수한다고하긴했는데ㅠㅠㅠㅠ

  • 재수생 2018.03.12 2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네이버를 보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되었어요.2012년도에 작성하신글이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요..전 이번에 대학교자퇴를 하고 재수준비를하려고하는데 부모님께서 허락을 안해주시고 저도 마음도힘들고 지금이 3월인데 걱정도 되고 너무힘드네요..부모님께서는 넌 안된다라며 말씀하시고 또 돈때문에 걱정도많고 진짜힘들어요.이제20살 너무 자존감이 낮아지고 두려웠는데 이 글들을 보고 그래도 해보자라는 자신감 (?)이 조금은 생겼어요.지금 저는 걱정도많고 죄송스럽고 솔직히 두렵네요

    • 저도 참 두려웠지요. 돈 걱정도 많이 했고요. 그래도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의 노를 저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이때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 당시는.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렵죠. 선택의 문제. 후회없는 선택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요. 건투를 빕니다. 대학교 자퇴를 하고 다시 대학교를 가려는데는 님만의 목표가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믿고 도전(?)하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