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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어찌어찌하다가 수능을 세 번 보았던 내 청춘의 이야기다.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실패담 혹은 에피소드에 가깝다.



2003년 7월 여름. 공대생이었던 나는 자퇴를 하기 위해 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자퇴 하려고 왔는데요."

"네?"


자퇴하는 학생을 오랜만에 보는지 긴 머리의 여자 교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퇴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네, 여기 서류작성하시고요. 자퇴이유 적고, 학과장님 도장을 맡으셔야 돼요."


대학교 자퇴는  간단하면서도 귀찮은 과정이었다. 


'아놔..뭐라고 써야 되는겨...'




서류에 이것저것 적어 나가다가 자퇴이유에서 막혔다.

몇 십초를 망설이는데 보다못한 교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간단하게 적어주시면 되요. 학업상의 이유라던지..전공이 안맞아서 새로운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등등."



에라 모르겠다하고 이런 식으로 적은 걸로 기억한다. 


'적성이 맞지 않아 새로 공부해서 다른 과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싱거운 자퇴이유였다. 

거기에 '졸라 등록금도 비싸서'라고 추가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쨌건 자퇴이유를 적은 종이 한 장을 들고 학과장님을 찾아갔다.



"똑똑똑...000학과 학생입니다."



학과장님의 도장을 받는 과정도 꽤 싱거웠다.

학과장 교수님은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왜 자퇴하려는 건가?"

"네..그게..적성이 맞지 않아 새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더 공부를 해보지 그런가..아직 1학년인데.."

"네..그냥 자퇴하려구요..인문쪽으로 바꾸려고요."



이후 한 두마디 더했을까.

학과장님은 '열심히 한 번 해봐'라는 말씀과 함께 도장을 쾅 찍어 주셨다.

늘상 있어왔던 일이라는 표정이셨다. 

꽤나 무미건조한 시간이었다. 


다시 종이를 들고 그 여자 교직원에게 갔다.

캠퍼스에는 여름방학중이라 사람이 없었다.



"네 자퇴처리 되었습니다."



총 합해서 15분 정도 걸렸을까.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6년의 중고등학생시절이 필요했지만, 자퇴를 위해서는 15분 정도만 있으면 되었다. 참으로 허무했다.




그렇게 나는 그 대학교에서 눈녹듯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캠퍼스를 걸어 나가는 데 별 생각이 다 났다.

아침마다 조깅을 했던 친했던 친구.

짝사랑했던 그녀.

삼탄으로 갔던 스무살 첫 MT의 추억.

풋풋했던(?) 물리 및 실험시간. 

술 진창 먹고 생애 처음으로 피자를 그렸던 날.



스무살 공대생의 추억은 자퇴서 한장과 함께 청춘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데 가슴이 한없이 쓸쓸하고, 복잡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 일까...'

'자퇴서를 취소할까...'

'아니야...길은 있을거야..가보자..'


기차는 나의 우울을 싣고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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