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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김훈 기행산문집<풍경과 상처>, 문장맛 느껴보시라

by 이야기캐는광부 2012.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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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기행산문집<풍경과 상처>. 이 책을 읽는 기쁨은 문장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재미에 있다. 김훈 문장의 맛은 쓰기도 하고, 사무치기도 하고, 톡 쏘기도 하고, 입안과 머릿속이 벙벙해져서 어렵기도 하다. 이런 기행산문집은 어떻게 리뷰를 남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밑줄그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게으름을 피울 수 밖에. 밑줄 그은 것들은 가슴이 시키는대로 한 것도 있고,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없이 그은 것도 더러 있다.


바위를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은 김훈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바위는 집적된 면과 집적된 선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면이 흘러내리다가 뒤틀리고 포개지면서 또다른 면으로 전환된다. 이 면들의 뒤틀림과 이어짐 그리고 포개짐의 전환을 이끌면서, 그 전환의 윧동이 하늘로 치솟아 고준을 이룬다.

- 44쪽, <겸재의 빛> -



소설 <흑산>을 탄생시킨 생각의 배경이 이 문장들에 농축되어 있는 게 아닐까.


형틀에 묶인 정약용, 황사영, 이승훈 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며 울부짖었다. 정약용의 배교는 철저하고 거침없었다. 그는 주문모를 밀고했고 천주교도를 색출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을 포청에 조언했다.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발뱀하자 이승훈은 자신이 정약용에게 세례준 사실을 폭로했다. 

- 53쪽, <정다산에 대한 내 요즘 생각>-



대학교시절 학술답사 때 소쇄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같은 곳을 방문하는데 나는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풍류가 느껴지는 곳이다.'라고만 생각했고, 다음처럼 생각하지 못했다. 풍경을 꿰뚫어 버리는 김훈의 눈은 이토록 놀랍다. 때로는 김훈이 무섭다.


소쇄원에서는 어떠한 관측소도 풍경 전체를 일방적인 사정거리안에 두지 않는다. 소쇄원의 어느 구석을 어슬렁거려보아도, 인간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관측소가 형성되고, 좀 전의 관측소는 스스로 소멸하여 풍경 속으로 편입된다. 풍경은 흘러 가면서, 새롭게 바뀌고,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물로서의 완강함을 버리고 존재의 껍질로부터 풀려난다.

- 61쪽, <낙원의 치욕> -



김훈 같은 소설가들은 언어의 사슬을 끊고 의미를 날아오게 한다.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가량하는 자들의 시선이 닿을 때, 무의미한 것들은 사물성의 벽에서 풀려나 언어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날아올기 시작한다.

- 65쪽, <낙원의 치욕> -



대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몇 번을 곱씹은 문장이다. 대나무는 올 곧은 선비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무자비한 죽창으로 변할 수 있다. 사물의 양면성을 꿰뚫는 김훈의 명솜씨를 보시라.


한 그루의 대나무를 들여다보는 인간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대나무는 비어 있고 단단하고 곧다. 인간의 시선은 분열되어 있다. 대나무는 비어 있고 단단하고 곧다. 인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세계를 마주 대하는 인간의 자세의 양극단은 악기와 무기다. 인간은 악기를 만들 수도 있고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속 빔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거기에 구멍을 뚫어 피리를 만든다. 저 자신이 비어 있는 존재들만이 음악을 이루는 소리를 생산해낼 수 있다. 모든 악기는 비어 있거나 공명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단단함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대나무의 한쪽 끝을 예각으로 잘라내 죽창을 만든다. 대나무를 그리는 동양의 수묵화들은 그 나무의 곧음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휘어늘어짐이나 구부러짐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보다 곧음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고 갑갑한 일이었으랴. 곧은 것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 아름답다는 느낌 속에는 얼마나 크고 모진 자기 학대와 극기가 스며 있는 것일까.

- 99쪽, <악기의 숲, 무기의 숲> -



김훈의 문장 앞에서 늘 나는 난감했고, 결국은 쉽게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나는 인문화되지 않은 자연 앞에서 애증병발을 느낀다. 인문화되지 않은 자연은 매혹적이고 거기에 어떤 해답이 있어 보이지만, 그렇게 위대한 날 것 앞에서 나는 늘 난감했고, 결국은 감당해낼 수 없었다.

- 110쪽, <대동여지도에 대한 내 요즘 생각> -





아직 중년의 가을을 느껴보진 못했지만, 살면서 가끔 찾아오는 생각들이 녹아있다. 거둘 것이 없을 때 얼마나 허망하고, 기운이 쫙 빠지던가.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 거둘 것 없는 자들의 가을은 지난 여름의 무자비한 증발작용이 흰 소금의 앙금을 가득 깔아놓은 서해 남양만의 염전에서 오히려 편안하리라. 소금밭의 가을은 바래고 바래서 더이상은 증발될 것이 없는, 하염없는 말라 비틀어짐의 가을이다. 세계가 세계사에 의하여, 또는 문명이나 논리에 의하여 가득 채워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썰물의 서해는 감당할 수 없이 막막한 빈 공간을 안겨다준다.

- 131쪽, <염전의 가을> -



남루한 한 척의 어선을 보고 김훈은 이렇게 썼다. 나같으면 배 한 척의 외로움만 느끼고 뒤돌아섰을 테지만. 쩝.


남루한 한 척의 어선은 그 운명의 풍경 속에서 먹이의 이쪽과 저쪽을, 그 고통스런 정상과 고통스런 밑창을 연결시키는 생산자의 때묻은 우주다. 개펄에 밑창을 댄 3톤 연안어선들의 피곤한 용골이 이물에서 고물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힘겹게 가로지르며 선체의 등뼈를 이루었고, 고물에 뚫린 구멍 아래로 내밀어진 키는 밀고 써는 바다의 횡파를 손바닥만한 널빤지의 두께로 받아내면서, 물고랑을 따라 바다와 포구를 오르내리며 먹이의 이쪽 끝과 먹이의 저쪽 끝 사이를 오가는 생산자의 방향성을 안쓰럽게도 버티어내고 있었다.

- 150쪽, <먹이의 변방> -



새우에 대한 재미나고 아려오는 묘사다. 김훈의 감수성은 촉수가 길고 끈질기다.


자연사가 시작된 알 수 없는 시원의 시간 이래로 새우라는 종족의 자기 방어의 오랜 역사가 쌀새우들의 그 바늘 끝만한 대가리와 가슴에 갑옷을 씌워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갑각류인 것이다. 그것들은 너무 작아서 씹어서 삼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들 위에 소금을 뿌려 새우젓을 만든다. 그 젓은 젓갈 중에서 최상품이다. 쌀새우로 담그는 젓갈의 냄새는 아리다. 그 냄새는 가장 빈약한 바다에서 건져지는 가장 애달픈 먹이들이 인간의 간에 절여진 냄새였고, 자연의 먹이와 인간의 먹이가 교대하는 생산자의 우주를 채우는 냄새였다.

- 151~152쪽, <먹이의 변방> -



기행산문집은 한 번 쓰윽 읽으면 어렵지만, 몇 번이고 들여다 보면 그 의미가 팔딱팔딱 거린다. 물론 내가 쉽사리 그 의미를 건져올릴 수 없었던 난해한 문장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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