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독서노트(454) 2019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오은의 '나'

이야기캐는광부 2019. 1. 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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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로 잡히는 시.


오은의 '나'. 2019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에 실렸다.



나


                              오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 갔다


혼자는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었다가

사람들 앞에서는

왠지 부끄러운 것이었다가


혼자여도 괜찮은 것이

마침내

혼자여서 편한 것이 되었다


화장실 겨울은 잘 닦여 있었다

손때가 묻는 것도 아닌데

쳐다보기가 쉽지 않았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무도 보지 않은데도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볼꼴이 사나운 것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처럼

웃다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는 표정처럼

웃기는 세상의 제일가는 코미디언처럼


혼자인데

화장실인데


내 앞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