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738) 직장인의 글쓰기 6단계 문서 작성법
1단계는 글감이다. 재료가 중요하다. 재료가 부실하면 아무리 솜씨 좋은 건축가나 요리 장인도 멋진 집,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글도 그렇다. 재료가 신선하고 풍부해야 한다.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32개의 노란 폴더가 깔려 있었다. 주제별 폴더였다. 내가 써야 할 글의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그야말로 중복도 누락도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이 폴더를 채워나가는 재미로 살았다. 사람은 본시 수집하고 축적하는 걸 좋아하는 듯싶다. 내가 보고, 읽고, 듣는 것 중에 32개 폴더 내용과 관련없는 것은 없었다. 세상 모든 게 이 폴더 어느 것엔가 해당됐다.
2단계는 편집이다. 상사가 어떤 주제의 글을 쓰라고 하면 나는 32개 폴더 중 해당하는 곳을 찾았다. 마치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할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것처럼. 그 안에는 이미 재료가 그득하게 쌓여 있다. 음식을 만들어야 할 때 장을 보러 나가면 이미 늦다. 평소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놓아야 한다. 음식을 만들 땐 냉장고 안 재료 중에 필요한 것을 고르기만 해야 한다. 나는 폴더에 쌓여 있는 글감 중에서 당장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이때 무엇을 고를까 고민이 되는데, 이는 써야 할 글의 개요를 짜는 과정이 된다. 나는 책상 앞에 72개의 단어를 붙여놨다. 이 단어들은 상사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다. 예를 들면, 현황, 문제점, 해법, 기대효과, 예상쟁점, 실행계획 등이다. 이들 단어는 내가 써야 할 보고서의 중간제목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것만 있으면 기획안, 제안서, 품의문, 협조전, 회의나 출장 결과 보고서, 공지문 할 것 없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이들 구성요소의 조합이 보고문서이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가보면 직장에서 쓰는 글의 구성요소를 채집할 수 있다. 반나절만 시간 내면 종이 한 장에 정리 가능하다. 책상에 붙여놓고 문서를 써야 할 때 한번 읽어보자. 한 쪽 분량의 짧은 문서면 4~5개의 단어만 고르면 된다. 한 쪽 안에는 네댓 개의 중간제목밖에 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문서는 그에 맞는 단어 수만큼 골라야 한다. 이렇게 몇 개의 구성요소를 조합하는 것이 문서 작성이다. 그 능력이 기획력이다.
3단계는 말하기다. 쓸 내용에 대해 먼저 말해본다. 우리는 글쓰기에 앞서 말부터 배운다. 글쓰기보다는 말하기가 쉽다. 말에 의지해서 글을 쓰는 것도 좋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쓰면서 내가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은 대통령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그분은 말을 해야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대통령이 연설문 내용을 구술해주겠다고 부를 때 생각이 정리돼서 부르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가서 “이제 됐다. 이렇게 하자” 하면서 정리해주신다. 대통령은 말하고 나는 쓰는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바꾼 후, 그것을 다시 글로 바꾸는 과정이다.
말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술을 먹고 말을 하다 보면 ‘이렇게 멋진 생각이 어떻게 내 머릿속에 있는 거지?’ 하고 신기해한다. 말을 하다 보니 생각난 것이다. 나는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을 때도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 나간다. 친구와 얘기하다 보면 쓸거리가 생각나는 경우가 많다. 글 쓸 일이 있으면 누군가 찾아가 쓸 내용에 관해 말해봐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곧장 글로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단 말로 번역한 후 글로 만들어라.
4단계는 쓰기다. 글을 쓰는 데는 어휘력과 문장력이 필요하다. 나는 내 어휘력과 문장력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온라인 국어사전을 열어놓고 쓴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글에 쓰지 않는다. 대신 국어사전에 쳐본다. 그러면 유의어가 뜬다. 그중에 내가 생각했던 단어보다 더 좋은, 문맥에 더 맞는 단어가 있을 수 있다. 그 단어를 다시 국어사전 검색창에 쳐서 예문을 살펴본다. 어떤 단어를 치든 많은 예문이 뜬다. 그 예문들 가운데 주어와 서술어, 수식어 등을 고른다. 그러면 문장이 만들어진다. 그야말로 단어를 한 땀 한 땀 쳐보면서 글을 쓴다. 이렇게 쓰면 못 쓸 글이 없다.
어느 누구도 국어사전만큼의 어휘력과 문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자동화된 시스템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쳐보면서 글을 쓰는 건 수작업이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수작업이 훨씬 경쟁력 있다. 상사 입장에서 문서를 검토할 때도 이 방식은 유효하다. 아래 직원이 써온 문서를 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이 단어, 저 단어를 국어사전에 쳐보라. 그리고 유의어와 예문을 챙겨서 보고 이를 참고해 단어와 문장을 고쳐주면 된다.
5단계는 독자 영접이다. 독자로 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김우중 회장의 글을 쓸 때, 독자는 세 사람이었다. 나의 부서장, 담당 임원, 비서실장. 이들을 통과해야 내 글이 회장 자리에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글이 됐다. 여러 군데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애초 불가능했다. 그것을 안 이후부터는 독자를 한 사람으로 정했다. 그 독자는 글의 내용에 따라 달라졌지만, 회장을 포함해 넷 중 하나였다.
그렇게 독자를 정하면 그가 내 글에서 원하는 것을 찾았다. 그러면 쓸 게 생각났다. 생각난 것을 쓸 때는 그가 내 글에 보일 반응을 들으려 노력했다. 한 문장을 쓰고 나서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귀 기울였다. 그러면 그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향이 있다. 두괄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미괄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나는 독자의 소리를 들어 그것을 글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글의 통과 확률이 높아졌다.
6단계는 퇴고다. 잘 쓰는 사람은 쓰기보다 고치기에 무게중심을 둔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많이 고치지 않는다. 내가 모신 두 대통령은 연설문을 읽는 순간까지 고쳤다. 행사 전날 밤까지 고친다. 행사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고친다. 행사장에 가서도 앞 연설을 들으며 고친다.
상사에게 글을 보여주기 전에 나는 두 가지 작업을 먼저 했다. 하나는 체크리스트로 글을 점검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답노트를 가지고 상사가 싫어하는 부분을 없애거나 바꾸는 일이다.
나는 글을 쓰고 나면 체크해보는 43가지 점검 항목이 있었다. 오탈자가 있는지, 비문이 있는지, 사실의 오류가 있는지, 빼도 되는 건 없는지, 제목은 적절한지, 문제를 정확히 정의했는지, 문제 해법이 실효성이 있는지, 실행계획은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지, 향후 과제나 미래 방향을 포함했는지, 자료 수집과 조사는 충분했는지, 상호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지, 상사가 듣고 싶어 하는 내용 중에 빠진 것은 없는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지, 내용은 정확하고, 설득의 근거는 풍부한지, 해법, 대안, 해석 같은 내 의견이 담겨 있는지, 한 번만 읽고도 이해가 되는지와 같은 항목들이다. 이는 상사가 주로 체크해보는 것들이다.
<직장인의 글쓰기>, 강원국 - 밀리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