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독서노트(740)인공지능과 바둑, 창의성

이야기캐는광부 2025. 9. 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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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정의하기도, 측정하기도 곤란한 개념이다.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창의성에 대해 “특정 영역에서 새로운 결과물을 내고, 그것이 그 영역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그 영역이 오래전부터 존재했든 새로 등장했든, 독창성 혹은 창의성에 관한 판단은 그 영역에 정통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37 바둑에서의 창의성은 프로기사들이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먼저 온 미래>, 장강명 - 밀리의 서재

 

이세돌-알파고 2국을 해설하면서 알파고의 바둑에 대해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창의적인 수들이 많다”라고 평가했던38 이희성 9단은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그는 KB바둑리그 원익팀 감독이다.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그건 그냥 인간에게 잘 안 떠오르는 기발한 수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창의성과 기발함이 저는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 기사들에게는 다양한 기풍[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 나타나는 각 개인 특유의 방식이나 개성]이 있었잖아요. 저조차도 남들과는 똑같은 포석을 두기 싫어서 저만의 포석을 만들었거든요. 제가 연구해서 만든 거니까 남들은 모르고, 사실 저도 답은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으니까 실전에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썼죠. 그런 게 창의적인 거 같아요. 인공지능이 두는 수들은 그냥 정답에 가까운 수죠.”

  이희성 9단은 창의성은 인간적인 특성이며, 창의적이라고 해서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워드 가드너 역시 앞서 언급한 책에서 “창의적이지 않은 전문가가 존재하며, 전문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경우에도 창의성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먼저 온 미래>, 장강명 - 밀리의 서재

 

나는 물론 문학이 예술이라고 믿고 있다. 내 인생의 상당 기간을 소설 집필에 바쳤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쓰려면 작가에게 철학이나 어떤 문학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소설 원고를 쓸 때 그 철학에서 문장이나 플롯을 연역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 직관에 의존한다. 다음에 쓸 단어, 다음에 쓸 문장이 머릿속에 어떻게 떠오르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마술처럼 떠오른다고, 어떤 흐름을 따라간다고 말할 수밖에. 내 원고를 고치거나 남의 작품을 보고 감상문을 쓸 때, 혹은 문학상을 심사할 때 어떤 문장들이 다른 문장들보다 더 낫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때 내가 근거로 사용하는 언어도 매우 추상적인 표현들이다. 아름답다든가, 단정하다든가, 섬세하다든가. 이런 표현들은 다 어림짐작이고 비유에 불과한 걸까?

  사실 문학이 뭐냐는 질문 자체에 대해서도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뿐 아니라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나 강연장에서 바로 그 질문을 받는데, 답은 제각각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많은 소설가와 평론가가 문학이 뭔지 제대로 정의도 내리지 못하면서 ‘누구누구의 작품이 대단히 문학적’이라고 말한다. 차라리 ‘끝없이 먼 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거나 ‘아직도 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편이 더 정직한 것 같은데.
<먼저 온 미래>, 장강명 - 밀리의 서재

 

“바둑 역사를 길게는 5000년으로 보거든요. 그 5000년 동안 바둑의 패러다임은 인간 중심이었는데, 그게 끝난 거죠. 단순히 포석이 변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바둑을 대하는 방식, 바둑의 토양이나 문화 같은 게 송두리째 다 바뀌어 버렸어요.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을 도(道)로 봤던 관점이라든가, 입단 제도라든가, 관전 문화, 프로기사들의 삶, 아마추어 기사들의 삶 등등 바둑의 전 영역에 걸쳐서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먼저 온 미래>, 장강명 - 밀리의 서재

 

이하진 4단은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었다고 했다. 국제바둑연맹(The International Go Federation) 사무국장을 지낸 그녀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한국기원의 창구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 4단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프로기사를 사직하고 개발자가 되어 현재는 아마존에서 일하고 있다. 다만 프로에서 은퇴한 이유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결과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제가 어려서 바둑을 배울 때 바둑은 평생 공부를 해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프로기사 수준이 되면 누군가에게 배운다기보다는 스스로 갈고닦고 혼자 수련하는 거죠. 그래서 아무도 답을 모르는 것을 내가 공부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연구하던 것과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상태에서 연구하는 건 다르죠.”
<먼저 온 미래>, 장강명 - 밀리의 서재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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