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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0일. 연말이라 술에 살짝(?) 취해 라푸마둔산점을 찾았다. 취하지 않은 척하려 애썼지만, 누가 봐도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이날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박범신 작가와 함께하는 송년 토크콘서트 무대를 바라보았다.

 

코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어디선가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내 입에서 나는 술 냄새인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고. 술 취한 와중에 작가의 찡한 이야기가 달팽이관 보다는 코끝에 먼저 전해졌나 보다.

 

“도로는 점점 넓어지지만 사람사이의 길은 더 좁아지고 있어요. 우리가 우주로 가는 시대에 이웃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습니다. 이런 발전이 무슨 필요 있어요? 행복을 위한 발전이 아니면.”

 

작가의 말이 가슴에 쿵. 수많은 연락처가 담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터치 한 번이면 연락할 수 있는 시대에 과연 사람 사이는 진정으로 가까워졌을까. 이날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점을 웅숭깊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범신 작가와 함께 한 송년콘서트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안돼요

 

“라푸마에 와서 꼭 100만 원짜리 옷을 안산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우리는 라푸마의 노예가 되는 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작가의 말에 라푸마둔산점 이상은 대표와 토크콘서트를 찾은 사람들은 묘한(?) 분위기속에 웃음을 빵 터트렸다. 작가의 화법에는 정곡을 찌르면서 등을 토닥여주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공간을 나눈다는 게 참 좋은 거죠. 상은이를 봐요. 참 행복해보이잖아요. 라푸마에 이런 공간이 있기 때문에 토크콘서트도 열고 하는 것이거든요. 이 공간을 상은이는 매우 창조적으로 반영하죠. 만약 상은이가 물건만 팔고 있으면 매우 불행할거에요. 딴 짓을 이렇게 하잖아.”

 

작가가 말하는 의미를 알겠다는 듯이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작가는 값 비싼 것과 돈만 쫓는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아야 우리 삶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분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고 출세도 하세요. 하지만 세계가 주는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내가 완전히 오염된 상태로 놔두지 마세요. 그것이 내 삶의 주인이 되게 내버려두면 안돼요.”

 

술에 취한 정신이 살짝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작가의 말을 술이 삶의 주인이 되게 하면 안 다는 말로 해석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술에서 덜 깼기 때문일 터. 아이쿠.

 

 

박범신 작가와 함께 한 송년콘서트

 

 

박범신 작가의 생각을 웅숭깊게 들여다보다

 

이날 토크 콘서트는 염통브라더스의 공연과 함께 포스트잇에 적힌 청중의 질문에 작가가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가는 청중의 질문에 솔직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진지한 답변을 해주었다. 참고로 작가의 답변이 무척 길다.^^; 작가의 말을 최대한 살려 그대로 옮겼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느끼게 하려면 작가의 말을 그대로 싣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길어도 꼭 끝까지 읽어보시길.

 

Q. 작가님 논산에 내려오게 된 동기가 뭔가요?

(작가로서의 상상력의 근원, 아내 정원을 통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 등 이야기)

 

"제 별명이 청년작가로 불리거든요. 청년작가로 산다는 것은 늙어서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죠. 그럼 이 감수성, 상상력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냐. 우리가 매우 안전하고 안락하고 모범생적인 마인드로는 상상력을 발현할 수 없어요. 상상력은 삐딱한 거에요. 안전한 인도를 따라 걷는 마음으로는 상상력이 없어요. 상상력은 약간 불안전해야죠.

 

그런데 이제 제 삶은 비교적 안정돼 있는거에요. 모든게. 내가 안정되면 죽음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불안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 감수성을 냉탕과 온탕으로 왔다갔다하게 할까.

내가 그렇다고 돈을 버리고 갑자기 가난해 질수도 없잖아요. 이 환경을 유지하면서 버리기는 싫으니까. 어떻게든지 나를 좀 불안정하게 해야 하는데.

 

40년 작가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활을 해봤겠어요. 집도 나가봤고, 교수도 하루아침에 때려치고 히말라야 세달 갔다왔어요. 혼자. 우리 제자들은 박범신 돌아오라고 학생들이 데모했어요. 그런데 뿌리치고 히말라야 갔다 왔더니 사표도 수리되고.(청중웃음)

 

그래 내가 정말 효과가 있을 텐데 안해 본 방법은 이거다. 그게 이혼이었습니다.(청중웃음)

여자하고 이혼만하면 한 10년은 불안하겠네 생각했어요.(청중웃음)

 

2층에서 논문 쓰다가 아래층으로 밤 3시쯤에 내려가니 마누라가 잠들어있더라고. 코를 골고. 옛날엔 이뻤는데 인제 65세니까 주근깨 올라와 있고, 배는 나왔고. 왠 이상한 여자가 침대에 자고 있고. 내가 사랑하는 그 여자가 아니에요. CC였는데. 그 여자는 없어지고 하마같은 여자가 씩씩거리며 내 침대에서 자고 있어.(청중웃음) 대체 이 여자 누구야. 그 여자(옛날의 아내 모습, 시간 등등을 뜻하는)를 도로 훔치고 싶었죠.

 

나라고 젊고 이쁜 여자가 이쁘다는 걸 모르겠어요. 이혼하자고 그럴려고 내려왔는데요.

 

근데 놀라운 게 있어요. 이제는 아름다움을 상실해버린 그 얼굴. 배 나온 중년, 노년기. 그 속에는 뭔지 알 수 없게 그냥. 그 여자와 내가 40년간 함께 살면서 함께 행복하고 얻어온 것들은 안 떠오르더러고요. 그 여자와 내가 함께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더라고요.

 

한편에서는 도망치고 싶지만, 한편에는 나도 모르게 달려들어 아내를 껴안고 울고 싶은 그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 내가 소설을 버릴 때도(절필 했을 당시) 이 여자는 버릴 수 없다. 이걸 깨달았어요. 소설을 위해서 40년 함께 산 아내를 이혼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사랑이란 것이 우리가 함께 살면서 조금씩 소실되고, 조금씩 낡아지고, 조금씩 많은 것을 함께 잃어가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사는 것이.

 

여러분은 젊으니까 앞날에 둘이 얻을 것만 떠오를 거에요. 아니요. 둘이 함께 얻을 것만 꿈꾼다면 사랑은 오래 못가요. 사랑한다는 게 뭐겠어요? 상대편의 그늘을 보는 것이고. 함께 잃어갈 것에 대한 애달픔을 나누는 거에요. 본질적으로 나는 그렇다고 봐요. 잠든 얼굴을 보니 그런 것들이 너무나 가득 차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논산시장이 논산으로 오래요. 그래서 공간이라도 바꿔봐? 그것도 마누라랑 같이 내려가면 의미가 없죠. 아침 먹으면서 시골로 내려가서 살 건데 같이 갈래? 물었어요.

 

아내가 “난 안가, 혼자가”라고 말했어요. 그게 내가 기다리던 대답이었어요.(청중웃음)

지금 논산에  가끔 아내가 오고. 저는 독거노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청중웃음)

 

 

박범신 작가와 함께 한 송년콘서트

 

 

쓸쓸하고 그러지만, 그 쓸쓸함을 이기기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하기도 하고 매우 고독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떨 때는 소주를 한 병 먹고 자기도 하고 소주 한 병 먹고 혼자 잘 때의 그 고독감들이 나를 청년작가로 깨우죠. 서울에 가면 아내가 삼시세끼 따뜻하게 해주고 천국이고. 논산에 혼자 오면 지옥일지도 모르죠. 왔다갔다 하는 거죠. 냉탕과 온탕을. 그렇게 작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Q. 은교를 쓰시고 오욕칠정 전문 소설가로 통하는데 작가님의 오욕칠정 해소법은 무엇인가요?

(은교가 상징하는 것, 늙어가는 것의 슬픔, 삶에 대한 자부심 등에 대한 이야기)

 

제가 오욕칠정 작가라 이런 질문 많이 받아요. 은교는 그냥 늙어가는 슬픔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60대가 되니까 너무나 고통스럽더라고요. 현재도 고통을 가지고 있어요. 일종의 잔인한.

 

지난주 장인이 91세인데 돌아가셨는데. 증환자실에서 두 달 동안 묶여서 살았어요. 음식도 목에 구멍을 뚫어서 넣고. 산소호흡기 넣고. 어떤 자식이 그걸 빼라고 했어요. 음식을 목구멍에 넣어가며 살려야 되겠는데. 이건 뭔가 잘못됐어. 평생을 고생하신 아버지들이 왜 이렇게 고생하셔야돼?

 

이런 것이 결국 늙고 죽고 병들고 그러는 거지요. 나는 이것을 탄생이전에서 부여받은 슬픔이라고 해요. 모두가 탄생이전에서 부여받은 슬픔은 뿌리칠 수 없어요. 불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환타지 속에 있어요.

 

은교의 이적요 시인은 평생 점잖게 살고, 온갖 오욕칠정을 억제하고, 이지적으로 상상하고 살아온 그런 인물이죠. 이적요는 자기의 오욕칠정을 강력하게 제복 허리안에 밀어넣고 최고의 시인으로서 우뚝선 삶을 산 노인이죠. 한 번도 자기 안에 있는 본질적인 자기를 해방 시킨적 없는 삶을 살았죠.

 

이 세상의 구조에 평생 억눌려 있던 것이 은교라는 은혜로운 처녀를 보면서 폭팔하면서 탄생이전으로부터 부여받은 슬픔,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슬픔, 그 시간의 양식에 한번 강력하게 반란해 보는 거죠.

 

이적요가 은교하고 자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영화만 보고 소설안 본 사람이 오해하더라고요. 그 노인은 강력하게 시간을 한번 반란해보고 싶었고, 은교는 노인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가치를 말하는 거에요. 은교를 여자로 한 것은.. 소설이 아슬아슬하고 재밌어요. 그 여자가 스물 일곱살 먹어도 상관없어요. 소설의 본질은 훼손 안돼요.

 

차라리 여자로 하지 말고, 세계에서 제일가는 여성산악인, 히말라야 완등을 처음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면 은교를 그 꿈에 갔다 놔도 돼요. 이적요 노인은 평생 세계에서 일등 가는 산악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못됐다. 그래도 소설의 본질은 해소되지 않거든요.

 

은교라는 여자는 나의 관념 속에 지어낸 여자인데. 어떤 가치 불멸의 가치. 늙지 않는 것. 멈춰있는 시간. 진선미를 완전히 갖춘 것. 좌우를 넘어선 것. 그 가치의 상징들을 내가 관념속에서 만들어놓은 것이거든요.

 

스물일곱살로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아슬아슬해야죠. 잘못 건들면 민법. 열일곱살 잘못건들리면 형법이에요. 소설이 이렇게 해야 재밌어요. 원래 13살로 할까했어요. 그 소설을 쓰며 감옥가도 좋다. 13살로 하면 소설 ‘로리타’라고 오해하겠더라고. 로리타는 남성들의 유아 선호 본성을 오로지 조준한 소설이에요. 박범신의 은교가 상징하는 것은 불멸의 가치에 대한 욕망이죠.

 

오욕칠정 전문가가 돼버렸어. 특별한 노하우는 없지만. 전략적으로 가진 노하우는 없어요.

박범신이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는 아니지만 자신만만해 보이지는 않나요? 저는 수십억 빌딩 살 돈이 없어요. 나는 아무런 권력도 없어요 작가를 해가지고 재벌은 될 수 없어요. 중산층 정도 사는 거에요. 나는 가진 게 사실 없어요. 그렇지만 나한테는 자신이 있어요.

 

첫째조건은 나는 평생 내 원하는 길에서 살았죠. 이 길을 살면서 어디에 소속되거나 신세 진적 없어요. 나는 완전 단독자에요. 나는 정치권에 신세진 적도 없고. 작가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있죠. 근데 박범신은 정말 없습니다. 이 나이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내 길을 따라서 잘 살아왔다는 자부심. 나한테는 놀라운 재산이에요.

 

동시에 가장 이 나이 때 힘이 되는 것은 뭘까? 나는 순정이라고 보거든요. 세계로부터 나는 완전히 오염되지는 않았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져야 나는 성공이라 봐요. 나한테는 어떤 순정들이 남았어요. 아주 가난하지 않다면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다닐 수 있어요. 박범신의 행복은 그거죠. 그 자신감에 기대면 오욕칠정의 마음을 완전히 감출 필요가 없어요. 나는 수많은 여자에게 작업멘트를 때리고 손을 잡고 그래요.(청중웃음) 내가 가진 도덕률로 내가 가진 감정들을 정확하게 핸들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죠.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자신의 오욕칠정을 해방시키고 살고 싶다면 내가 내 삶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차 있어야 돼요.

 

사람들은 오욕, 욕망이란 나쁜 거다. 이런 전제가 있어요. 오욕칠정 해방하는 것이 나쁘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욕망은 나쁜 게 아니에요. 욕망은 가치중립적인 거에요. 욕망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나쁘게 쓰면 나쁜 욕망이 되는 것이고 좋게 쓰면 좋은 욕망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오욕칠정을 소중히 여기세요.

 

나는 20평 사는데 내 친구가 40평 산다. 그거 때문에 불안하면 오욕칠정을 해방할 수는 없어요. 나는 20평 살아도 감사해. 내가 당당하게 열심히 일해서 20평 사는 거야. 우리자식들하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어. 자부심 가득하다면 왜 오욕칠정을 해방 못해요?

 

Q. 청년작가이신데 나이 들어서 바뀌었으면 하는거?

(늙은이와 젊은이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조언, 아름답게 늙는 법 등의 이야기)

 

나는 논산에 와가지고 많은 사람 만났는데요. 내가 동창회는 잘 안가요.

 

내 친구들을 수십 년을 만났는데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동창생을 30년간 만나면 모해요. 그렇게 친했으면 수십 년을 만났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에요.

 

동창회가면 너 어디살어. 개인주택이야 아파트냐. 너 몇평이야. 요즘 그동네 평당 얼마하냐. 그러다 말이 없어요. 애는 결정된거야. 이자식이 나는 60평 아파트에 사는데 평당계산해보니 애는 5억도 안나가는고만. 이름만 알리더니 나보다 실패한 놈이네. 대화가 끝난거에요. 거기서 또 네 아들뭐하냐? 이렇게 묻는 놈은 아들이 성공한 케이스에요.(청중 웃음)대화가 이렇게 끝나요.

 

늙어가는 남자들의 ..나는 너무 짜증나요. 나는 그게 싫어요. 많은 노인들이 젊은이들 틀려먹었다고 해요.아니요. 나는 젊은이들에게 배우려고 해요. 우리보다 나요. 절대빈곤의 시대 우리들에 비해 훨씬 낫다고 봐요. 자기 감정 컨트롤하는 것도 낫고요.

 

나는 심지어 최신곡도 늘 부를려고 해요. 몇 년전에 했는데. 내가하면 다 뽕짝같다고 그러긴 해요.(청중웃음) 어쩔수없지만 늙을수록 오픈돼야 해요. 뭐든지 배타적이 되면 죽은거에요. 젊어서는 배타적이 될필요가 있어요. 남과 싸우고 인정안하고.

 

늙으면 반대로 로 오픈돼야해요. 이 나라 젊은이와 늙은이는 반대에요. 젊은이는 인도를 따라가려고 하고. 20대가 인도 따라 걸으면 안되요. 20대는 도전하고 불편하게 만들고 자기를 불안정하게하고 그게 에너지에요. 그런데 요즘아이들 너무 영약해서 너무 인도를 가요. 젊은이들이 모범생이 돼서 인도를 따라가요.

 

늙은이는 무한하게 열려야 합니다. 늙으면 내가 어떻게 하면 고독하게 살지 않을까 궁리를해야돼요. 세계에 대해 열려있어야돼요. 늙은 그는 바르게 살았다면 자기 이데올로기를 버리진 않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 바르게 60년 살았다면 왜 자기가 인생을 보는 세계관이 단단하지 않겠어요? 그 단단함이 내부에 있으되 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끝없이 오픈하는 것이 늙어감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지혜에요.

 

Q. 은교를 쓴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은교의 모티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자각, 청년에 대한 정의 등 등)

 

내가 사실은 은교 소설의 강력한 모티브를 대전에서 얻었어요. 대전에서 강연을 내려와서 시간이 많이 남아서 어디 은행동 대흥동인데 우리 누님이 거기서 살았어요. 다리넘으면 백화점 맞은편 지역. 내가 20대에 자주 왔었죠. 밤중인데 까페 올라가고 그러니. 문소리가 나니까 애들이 나를 쫙 돌아다 봐요. 나는 한 번도 젊은 아이들하고 경계심이 없어요.

 

그런데 그때 젊은이들의 시선이 너무나 배타적인 느낌. 재는 뭐야?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아마 내가 늙어가는 자의식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나봐요. 내가 자의식이 없다면 바라보는구나하고 갔을텐데.  화나고 슬프고 불질러 버리고 싶더라고. 개들 잘못은 아니에요. 우리나라 문화가 잘못된거지. 자본주의, 효용성 중심의 문화, 싸가지없이 발전해온 우리문화의 전반이 인간과 인간대의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을 다 말살시켜버렸어요.

 

우린 사람을 보지 않아요. 우리는 만나면 뭐하는 사람이야? 직장인이야? 아니 학생인데요. 이건 그 사람을 아는 거하고 아무 상관 없는거에요. 그건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전혀 단서가 안돼요.

 

나이가 많다고 그러면 그냥 나이가 많은 놈이라 생각죠. 나이만은 머리가 하얀 노인네속에 어떤 청년이 들어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죠. 젊은이도 마찬가지에요. 젊지만 늙은 애도 있고, 늙지만 젊은 애도 있어요.

 

청년이 뭐냐? 자기 변혁에 대한 욕망이 없으면 늙은 거에요 나는 인도를 따라 걷는 표준적인 모범생을 싫어해요. 거기에는 기댈 수가 없어요. 거기에 미래가 없다고 봐요. 내가 변혁되지 않고는 세상은 변혁되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을 끝없이 변혁시키려고 우리는 노력해야돼요.

 

우리들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가진 기득권을 수성하는 것만 급급하고 세상이 가르치는 습관대로 인생을 산다면 죽을 때 후회하죠.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불안에 빠트릴 수는 없지만 우리 삶을 잘 안전하게 지키면서 보다 발전시키면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어떻게 변혁시켜 가려는 지에 대해서 계속 꿈을 꿔야 해요. 그건 늙은이나 젊은이나 똑같은 거에요. 그런 자기변혁의 욕망이 남아있으면 그는 여든 살이 돼도 청년이에요.

 

자기변혁에 대한 욕망은 하나도 없고 세상이 가르쳐준 욕망에 따라 산다면 스무살 이래도 그건 늙은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통하는데 있어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Q. 글을 잘 쓰시는 사람들은 언변이 약하다고 하는데 박범신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자리 많이 불려 다녀요. 그러면 두 사람이 나가있는 셈이에요. 원래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의 나. 내성적인 나. 그것도 작가로서는 내적편차의 자산이죠. 내가 말도 잘하고 하는 게 나인지. 내성적이고 우울한 소년인 본질이 나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중적인 나가 충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좋죠. 언변이 좀 약한 것이 좋아요. 말을 유창하게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더듬거리면 저 사람은 정말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처럼 말을 유창하게 말해도 진실한 사람들이 있어요.(청중웃음)

 

 

박범신 작가와 함께 한 송년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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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제공해주신 이재형님과 녹음 파일을 제공해주신 이시형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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