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박경리기념관을 나와 통영시내쪽으로 들어왔습니다. 도중에 들린 윤이상 기념관.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작곡가 윤이상(尹伊桑, 1917. 9.17통영- 1995. 11.3.베를린) 은 통영이 고향입니다.
1939년 이후 일본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하고, 1946부터 52년까지는 통영과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56년까지는 부산과 서울의 여러 대학 강단에 서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1972년부터는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명예교수로, 1977-87년에는 베를린 음악대학의 정교수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예술가의 삶이란 과연 어땠을까하는 호기심.
생애 처음으로 들린 작곡가의 기념관.
이런 생각에, 마음속에는 설레임 가득한 가곡의 선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작의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현대음악가이기도 했던 작곡가 윤이상.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실내악곡 『낙양』(洛陽 Loyang), 관현악곡 『예악』(禮樂 1966), 오페라 『류퉁의 꿈』(Der Traum des Liu-Tung 1965),『유령의 사랑』(Geisterliebe 1970), 『심청』(1972), 3개의 교향곡 등이 있습니다.
드디어 기념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구 옆에 기념관 건물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안에 윤이상 선생님 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 둘러보던 중, 그의 얼굴을 석고로 만든 전시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음악을 작곡하기위해 묵상에 잠겨있는듯한 모습이었습니다.
1910년대 부터 사셨던 분답게, 그가 간직했다는 구화폐를 비롯해 소형태극기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작곡가이신데 전자계산기는 무엇에 쓰셨을지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가 썼다던 안경과 안경집 그리고 헤진 사전 몇 권이 앤티크한 멋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안경너머 악보를 들여다 보았을 작곡가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가 손목에 찼던 시계에서 음악이 흘러나올것 같았습니다. 시침과 분침이 그가 작곡한 음악들을 연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요.
그가 작곡을 했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벽쪽에는 통영의 옛풍경이 액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상에서는 윗둥이 잘려나갔네요. 그는 이 액자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가 입었던 옷가지들과 들고 다녔던 가방, 타자기 등이 옛 추억을 간직한채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예술혼이 담긴 바이올린이 조명을 받으며 우아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바이올린은 작곡가 윤이상의 손길, 창작의 고통, 그의 음악들을 간직하고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밖을 나와 가념관의 독특한 외관을 감상했습니다. 비스듬히 지어진 건물과 그 위의 나무들.
'이 집에 윤이상 선생이 살고 있다'라는 글귀.
훗날 통영에 다시 찾아와도 늘 그자리에서 가곡의 추억을 들려줄 것 만 같은 이곳.
윤이상 기념관의 여윤이 대전에 돌아와서도 가시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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