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노트

독서노트(531)나무 이야기로 피어, 진달래

by 이야기캐는광부 2020. 11. 2.
반응형

"진달래는 온몸을 가볍게 단장하고서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지나간다. 줄기와 가지도 가볍고 꽃도 가볍다. 꽃잎이 얼마나 얇은지 석양이 비칠 때 햇빛 알갱이들이 꽃잎에 묻어 나오는 것 같다. 그 꽃잎 즈려밟고 가신 임도 있고, 꽃잎 따다 책갈피에 넣어 둔 소녀도 있을 테지만 봄산은 언제나 넉넉하게 색을 마련하고 있어서 서운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진달래는 혼자 뚝 떨어져 있어도 곱지만 군락을 이루면서 불붙듯이 화려한 색을 낸다. 혼자 있어도 그다지 쓸쓸하지 않은 것은 숲 언저리마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들이 있어서다. 겨우 내 온 산을 돌아가며 분홍색으로 박음질해 놓은 것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손에 손을 잡은 덕분이었다. 산마다 분홍색 벨트를 채우는 것이 어쩌면 진달래가 품고 있는 커다란 속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심은 화를 부를 것이기에 진달래는 형편없는 곳에 친구를 초대하지 않는다. 너무 높지도 않고 으슥하게 외진 곳도 아닌 밟고 낙낙하게 굽이진 기슭에 진달래가 모여 산다. 마음 맞는 친구는 굳이 부산스레 연락하고 치장을 부릴 필요가 없다. 훌쩍 나선 걸음에 만나는 얼굴, 진달래 같은 친구가 있다면 인생 잘 빚어 온 맛이 날 것이다. 맛 중의 맛이다."

 

-나무 이야기로 피어 84~85쪽-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