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앉아본 독서를 위한 가장 완벽한 자리는 미국 뉴햄프셔주의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엑서터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높고 거대한 공간을 16만 권의 장서가 꽂힌 책꽂이가 둘러싸고 있다. 마치 책이라는 웅장한 우주를 형상화한 것 같은 이 공간에서 16만 권의 행성 사이를 유영하다가 드디어 나를 위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한 권을 꺼내 들고 창가에 있는 책상으로 간다.
공간은 우주처럼 웅장하게 만들었지만, 독서를 위한 자리만큼은 인간적이고 섬세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책상에 앉으면 옆으로 2개의 창문이 보인다. 하나는 머리 위로 난 큰 창문이고, 하나는 책상 옆 눈높이에 있는 작은 창문이다. 두 창문은 역할이 다른데, 머리 위 창문은 빛을 실내로 들여와 책을 밝혀주는 조명 역할을 한다. 반면 눈높이 창문으로는
빌 게이츠의 창문처럼 독서하는 중간중간 바깥 경치를 바라볼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학교 캠퍼스가 보인다.
그런데 루이스 칸은 여기에 한 가지 장치를 더 했다. 눈높이 창문 위에 열고 닫을 수 있는 목재 덧창을 달아둔 것이다. 경치를 보라고 만든 창에 일부러 경치를 가리는 덧창을 달다니, 무슨 생각이었을까? 물론 눈높이 창으로 들어오는 강한 햇빛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직접 앉아서 잠시 책을 읽어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고등학생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혹시 루이스 칸은 시험을 앞두고 창밖을 잠시 쳐다볼 여유조차 없는 고등학생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창밖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면 너무 괴로우니까. 혹시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성 친구라도 지나가면 가슴이 설렐 테니까. 집중 모드와 한눈팔기 모드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창문. 창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책상, 그 작은 공간의 분위기가 바뀐다. 목재 덧창에는 자신을 향한 집중과 외부 세계로의 연결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건축가의 공간 일기>, 조성익 - 밀리의 서재
Phillips Exeter Academy Library /사진=https://en.wikipedia.org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워케이션, 맹그로브로 갔다. 들어서는 순간 ‘여기다!’ 싶었다. 독서하기 좋은 소파와 책상이 놓여 있고, 커다란 창으로 동해의 고요한 바다가 보였다. 이 경치만으로도 합격이었다. 책을 보다 지루해지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파도가 모래사장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먼 바다로 나가는 침착한 리듬을 누리다가 다시 페이지를 넘기는 리듬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자, 좋은 공간까지 찾았으니 나도 1년에 2번, 바다를 보며 싱크 위크를 해야지. 미리 스케줄도 정해두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네…,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습니다. 말이 쉬워 싱크 위크지, 생각만을 위해 동해안까지 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빌 게이츠는 전용 제트기가 데려다주지 않나!)
내게 필요한 것은 싱크 위크가 아니라 싱크 데이였다. 아니, 싱크 반차로도 족하다. 나에게는 어느 오후에 책을 몇 권 싸 들고 쓱 들어가서 생각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였다. 결국 동해안이 아니라 가까운 동네의 장소를 찾아내야 했다.
연희동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투어스비긴’이라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발견했다. 첫눈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의자 다리에는 소리를 줄이기 위한 테니스공이 꽂혀 있고, 책상 종류도 쿠션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누군가가 사는 평범한 거실에 방문한 느낌이었다. 창밖 풍경도 연희동 주택의 지붕이 보이는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책을 읽다 보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집중이 잘되고 마음도 편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공간인데, 몰입하게 해주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마침 그 자리에 사장님이 있길래 말을 걸어 봤다.
<건축가의 공간 일기>, 조성익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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