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를 지닌 사물을 찾아 떠난 여행, 지긋지긋한 전공책에서부터 우리은하의 두께까지
이 글은 바로 우리 삶 주변 사물들의 ‘두께’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야기입니다. 다가오는 가을.. 운치있는 곳도 좋지만 여행 경비 없이도 찾아 갈 수 있는 이 여행에 동참해보시는 건 어떨지요?
두께를 가진 사물들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제 가슴에 다가옵니다. 그 두께안에는 신기하게도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지요.
대학교 4학년인 내 주변에 있는 정말 지긋지긋한 ‘두께’
우선 가까운 곳부터 여행을 떠나 보겠습니다.
대학생인 제 주변에는 ‘두께’를 가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꺼운 전공책, 천원짜리 밖에 없는 있는 지갑, 슬픈 기말고사 시험지, 연인에게 주절주절 쓴 편지 그리고 굳게 쌓아놓은 토익책까지 말이지요.
그 중 전공책과 토익책은 정말 지긋지긋한 ‘두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백페이지나 되는 전공책에는 알기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깨알처럼 박혀있고, 토익책 여러 권은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무감과 하루의 피로가 가득 담긴 ‘두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몇 주전 치뤘던 기말고사 얇은 시험지에는 횡설수설이 가득 했고, 연인에게 썼던 편지의 얇은 두께 안에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오글거림이 담겨 있습니다.
아! 얼른 이 여행지를 벗어나야겠습니다.
전쟁터에 내몰린 소년병 그리고 20대 젊은이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두께’
그런데 이 곳 만은 차마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세계 각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을 말이지요. 그곳에 우리 또래의 20대 젊은이들과 보다 어린 소년병들이 삶과 죽음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전쟁이 참 많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코소보사태, 시에라리온 내전, 르완다 내전 그리고 이라크 전쟁 등이 말이지요. 그 전쟁터에서 한 소년병은 방탄복이 없어, 전쟁터를 관통하는 총알 세례를 0.5cm도 안 되는 두께의 옷깃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27살인 저와 같은 나이일지도 모르는 미국의 한 젊은이는 방탄복의 ‘두께’ 때문에 날라온 총알을 맞고도 살아남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취업전쟁을 치루고 있다면 그들은 진짜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한 소년병이 총알을 피해 숨어 든 건물의 두꺼운 벽에도, 20대 병사가 입은 방탄복안에도 생명을 지켜주는 ‘두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께’안에는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 고독감 그리고 삶의 비극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아, 가슴 아파서 이곳에도 오래 머물지 못하겠습니다.
종이박스를 싣고 가는 할머니가 말해주는 삶의 ‘두께’
다시 제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늦은 새벽녘 잠이 오지 않아 창밖을 내다보면 리어카 한 대를 발견합니다. 그 리어카 옆으로 종이박스를 주워 담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진 손, 굽은 허리 그리고 가녀린 체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포토 갤러리
그런데 어디서 힘이 솟는지 박스더미를 번쩍 들어 올려 리어카에 싣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가로등 불빛을 지나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그때 바라본 할머니와 리어카의 뒷모습 그리고 박스더미가 만드는 봉긋한 ‘두께’안에 삶의 힘겨움이 무겁게 쌓여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저마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삶의 무게 이자 두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제 시선은 밤하늘에 오랫동안 머뭅니다.
우주의 한 모퉁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감싸고 있는 경이로운 ‘두께’
가슴이 답답할 때 올려 다 보는 게 하늘입니다. 그중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더합니다.
얼마 전에 발사에 실패한 나로호의 모습도 눈에 아른 거립니다. 끝없는 우주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 저마다의 삶이 한없이 작게도 느껴집니다.
▲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의 모습
그런 우리의 삶과 나로호 발사 실패에 대한 아쉬움을, 우리 은하는 경이롭고 무덤덤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 은하는 막대나선형 은하로서 그 두께가 1만 5000광년(1초에 30만km를 가는 빛이 1만 5000년 동안 가야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질량이 태양의 3조배이고, 지름은 10만 광년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크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1만 5000광년이나 되는 우리 은하의 ‘두께’안에는 우주와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 경이로운 ‘두께’안에는 시험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20대 청춘, 친구들과의 소주 한잔, 이루고 싶은 꿈, 누군가를 향한 설레임, 맛있는 맥주를 먹을 때의 행복감 그리고 괴로운(?) 군복무 시절 등도 담겨 있을 겁니다.
이렇듯 우리 은하의 ‘두께’안에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가득 담긴 보이지 않는 ‘두께’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984년 봄, 어머니는 뱃속에 저를 임신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은 점점 두꺼워지기 시작하였고, 배는 점점 불러갔습니다. 어머니는 따뜻한 손길로 커져가는 제가 들어 있는 두툼한 배를 어루만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거시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포토갤러리 (by 브릿지)
제가 태어난 후 아버지는 저를 번쩍 안으시고는 두 볼에 뽀뽀를 해주셨고, 어머니는 꼬옥 안고 젖을 물리셨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들 모두가 제가 부모님 사랑을 따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요?
부모님이 안아줄때의 포근함, 어머니의 볼록한 배, 아버지의 푸근한 미소 안에는 모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두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 모든 것들엔 저마다 서로 다른 ‘두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공책이나 토익책이 가진 눈에 보이는 두께에서부터 사랑 그리고 삶이 지닌 눈에 보이지 않는 두께까지 말이지요.
나머지 더 많은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직접 여행을 떠나 찾아 보시면 어떨까요? 사람에 따라 어떤 사물이 지닌 ‘두께’의 의미는 달라질 테니까요. 지금 이 시간부터는 주변 곳곳의 ‘두께’를 향해 마음을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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