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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연구/스토리텔링노하우

[스크랩]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작품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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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작품입니다. 멀리 베트남에서 시집온 작은 어머니의 받아쓰기 노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연이었길래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일까요? 




내가 어렸을 때, 청각장애인인 막내 삼촌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여자는 깡마르고 어린 베트남 처녀였다. 만난 지 보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삼촌의 결혼에 가족들은 모두 복권이라도 맞은 듯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여자가 열여덟 살이나 차이 나는, 그것도 볼품없고 말 못하는 남자와 국제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삼촌이 말을 못하니 여자가 한국 말 못하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가족들은 그저 삼촌에게 시집오겠다는 여자가 고맙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면사무소와 복지관을 오가며 한국말 배우기에 열을 올리자 그것은 대견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경계심이 되었다.

여자는 하루가 다르게 말이 늘어 근방의 여느 외국인 며느리들보다도 훨씬 한국말을 잘했다. 속 모르는사람들은 말을 빨리 배우니 얼마나 좋으냐며 칭찬을 해댔지만 가족들은 모두 속을 태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도망가 버렸다는 외국인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가족들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쁜 농번기에도 한글교실에 빠지려 하지 않았다. 하루 정도 못 이기는 척 빠질 법도 한데 융통성 없는 여자는 기어이 탈탈거리는 삼촌의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로 나가려 했다. 끝내 할머니는 끓어오르던 화를 참지 못하고,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욕설과 그간 속으로 태우던 의심을 여과 없이 쏟아 부었다. 읍내로 나가려다 폭탄을 맞은 여자는 그날 밤 우리 집에 온 후 처음으로 꺼억 꺼억 소리 내 울었다. 가족들은 밤새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누구도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런 난리 속에서 정말로 침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삼촌이었다. 여자는 삼촌이 잠깐 어깨라도 다독여주면 금세 뚝 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삼촌은 끝내 가만히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얌전히 잠이나 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날리고 화장실을 가겠다며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여자에게 무언가를 쥐여 주며 대문 밖으로 내보내는 삼촌의 뒷모습을 목격했다. 다음날 삼촌이 여자에게 쥐여 준 것이 그간 차곡차곡 모은 삼촌의 적금통장이었단 사실을 알고 할머니는 몸져누우셨다. 

여자가 떠난 뒤, 나는 삼촌의 방에서 여자가 남기고간 받아쓰기 공책을 몰래 훔쳐보며 지냈다. 시집 온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삼촌과 여자의 받아쓰기 공책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삼촌이 그림을 그려주면 그것을 한국말로 바꿔 쓰며 받아쓰기 연습을 한 둘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득 여자가 그토록 부탁했음에도 갖은 핑계를 대며 단 한 번도 받아쓰기를 불러주지 않았단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울었다. 그리고 여자의 받아쓰기 노트를 통해 여자가 베트남의 가족들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삼촌의 아이가 여자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여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가족들을 삼촌이 말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삼촌은 여자가 베트남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고 다시 돌아올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삼촌과 여자 사이의 믿음이자 확신이었다.

정말로 한 달 뒤 여자가 거짓말처럼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모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자를 받아들였고 할머니는 나에게 괜한 트집을 잡으며 ‘왜 여자에게 작은엄마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몇 달 뒤 작은 엄마는 작은 아빠를 꼭 닮은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 누구보다 받아쓰기를 잘 가르치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훗날 작은엄마가 왜 그토록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려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학교 선생님이 되어 첫 발령지로 떠나던 날 작은엄마는 자기처럼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베트남에 있을 때 외국인 엄마들은 한국말을 잘 모르니까 아이까지 뒤쳐지게 된다는 말을 한국요리 선생님께 들었던 작은엄마는 한국에 가면 아이를 위해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었다 한다. 작은엄마가 한국말을 열심히 배웠던 이유는 삼촌을 떠나 잘 살기 위함이 아닌 삼촌과 함께 더 잘 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된 나는 아이들에게 받아쓰기를 불러줄 때면 항상 작은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열지 못해 받아쓰기 한번 제대로 불러주지 못했던 그 때의 일들을 반성하며 첫 문장은 항상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작은 엄마, 미안해.” 

글 : 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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