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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독서노트(77)휴일 휴일 문태준 내가 매일 몇 번을 손바닥으로 차근하게 만지는 배와 옆구리생활은 그처럼 만져진다 구름이며 둥지이며 보조개이며 빵이며 고깃덩어리이며 악몽이며 무덤인 나는 야채를 사러 간다나는 목욕탕에 간다나는 자전거를 타러 간다나는 장례식장에 간다 오전엔 장바구니 속 얌전한 감자들처럼목욕탕에선 열탕과 냉탕을 오가며오후엔 석양 쪽으로 바퀴를 굴리며밤의 눈물을 뭉쳐놓고서 그리고 목이 긴 양말을 벗으며선풍기를 회전시키며모래밭처럼 탄식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태준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2018. 7. 15.
2018 독서노트(76)타인에게 말 걸기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떨밀렸다고는 하지만 그런 내가 박대리와 함께 병원에까지 그녀를 따라왔다는 점은 도무지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깨에 힘을 주어 담뱃불을 비벼껐다. 내키지 않은 자리에 가게 되면 반드시 내키지 않은 일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을 전에도 몇 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은희경 중에서- -----------------------.. 2018. 7. 15.
2018 독서노트(75)이유도 없이 못 견디게 그리운 저녁 이유도 없이 못 견디게 그리운 저녁 권대웅 계절에도 늑골이 있다여름에서 가을로햇빛이 자리를 바꿀 때마다가려졌던 젖은 기억들이 드러나부끄러울 때가 있다따가울 때가 있다모두가 그것을 감추고 살지만봄이 목이 메도록 짙은 철쭉을 데려오고여름이 훌쩍 해바라기를 데려가듯이떠나간 것들이 다시 오고다시 온 그 무엇 때문에못 견디게 외로울 때가 있다때로 어떤 저녁지나가는 바람에 묻어 있는 냄새에오래 비어 있는 적산가옥 같은 것저녁의 뒤란 같은 것마당에 가뭇가뭇 꺼져가는 짚불 같은 것그곳에서 살았던, 사랑했던 기억이잠깐 떠오르려다가후다닥 먼 구름속으로 사라져버린다떠나고 다시 오며 바뀌어가는 것들그렇게 우리는 어떤 거대한 바퀴에 실려갔다가모든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서로가 그리운 계절에 다시 온 것 아닐까가끔씩 그 사이가 보이.. 2018. 7. 12.
2018 독서노트(74)폭포 폭포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 2018. 7. 11.
2018 독서노트(73)반복재생 나의 출퇴근은 반복재생이어라되감기, 빨리감기도 없는 정직한 재생이어라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안경을 벗고 팬티를 벗고샤워를 하고냉장고 문을 열어 차가운 음식을 꺼낸다구간반복. 삶은 구간반복.선풍기의 회전. 바람. 바람의 한숨.뜨겁다 알람이 울리고다시 반복재생이어라빨리감기머리 빨리감기양치 빨리하기졸린 눈 부비며바지, 윗도리 입기양밀 신기신발신기버퍼렁이 있는 출근길 발걸음이라버벅버덕되는 발걸음이라오늘도 반복재생 2018. 7. 10.
제83회 대전독서모임 산책 선정도서-파울로 코엘료의 '불륜' 7월 16일 제83회 대전독서모임 산책 선정도서-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일시 : 2018년 7월 16일 월, 오후 7시 30분장소 : 라푸마둔산점 2층 여행문화센터 산책참가비 : 5,000원(커피&다과) 2018. 7. 10.
2018 독서노트(72)퇴근 후 하는 일 밥통이 있고,밥통을 열고,밥그릇에 밥을 푸고밥그릇을 상에 놓고냉장고 문을 열고김치를 꺼내고멸치를 꺼내고계란을 꺼내고후라이를 하고무생채를 꺼내고접시에 가지런히 놓고숟가락질을 하고젓가락질을 하고숨을 쉬며 냠냠냠.다 먹고그릇을 씽그대에 던지고젓가락, 숟가락, 접시도 내던지고나 몰라라 거실에 벌러덩귀찮아서 내일로 미룬다설거지는 숙제다 기말고사다벼락치기다나도 설거지 꺼리나를 거실 차가운 바닥위에 내던진다 2018. 7. 10.
2018 독서노트(71)불륜 어떤 나이가 지나면 우리는 자신감과 확신의 가면을 쓴다. 이윽고 그 가면은 우리 얼굴에 달라붙어 떼어낼 수 없게 된다. 어린시절 우리는 눈물을 보이면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슬픔을 드러내면 위로를 받는다. 웃음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눈물을 동원하면 통한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하지만 우리는 더이상 울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욕실에서 혼자 울 뿐, 자기 자식들에게가 아니면 웃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함부로 보고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잠이 최고의 약이다.-70쪽 파울로 코엘료의 - 불가능한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용서를 빌어야만 하는 걸까?-153쪽 파울로 코엘료의 - 어른이 되면 우리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것-.. 2018. 6. 17.
2018 독서노트(70) 도시의 표정-평화의 소녀상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다. 새는 일반적으로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지만 여기서는 살아 있는 할머니들과 이미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을 잇는 영매의 의미가 추가된다. 이 맨발인 것은 당시 전쟁 때 찍은 사진에서 신발 신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평화비 옆에 빈 의자를 둔 것은 시민들이 그 자리를 채워 위로해 달라는 의도다. 제막식 날, 수요집회에 나온 할머니들이 이 동상을 수없이 안고 닳도록 어루만지는 것을 방송에서 봤을 때 많은 사람이 가슴 찡한 전율을 느꼈으리라.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바다에 오석으로 깐 그림이다. 몸은 소녀인 데 비해 그림자는 쪽진 머리에 등 굽은 할머니다. 소녀의 어깨에 새가 앉았다면 할머니의 가슴엔 나비가 새겨졌다. 나비는 환생을 뜻한다. 수요집회가.. 2018.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