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생활도 그럭저럭 할만했다.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가 주방의 접시와 냄비를 던지실지 모르지만. 그때 삼수해서 죄송했습니다.흑흑)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랑 섞여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창피할 것도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밥을 먹으러 계단을 지나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뭐 먹을까'하며 만화를 참 잘 그렸던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기욱아~!"
"???"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재수, 아니 삼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삼수한다는 건 기밀사항이었는데. 쪽팔려서 친한 친구 빼고는 말을 안했는데. 들키지만 않으면 되었는데.
'내가 삼수한다는 사실은 가족 포함해서 한 6명 정도밖에 모르는데..
아는 사람들은 다 다른 지역에 있는데.'
세상은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2초동안 멘붕이 왔다.
설마, 설마하며 뒤돌아 보았다.
녀석의 얼굴을 보고는 2초 정도 멍때렸다.
"야, 너...너."
"나 oo야"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때의 모습이. 작은 키에 웃을 때 큰 앞니가 드러났던, 꽤 귀여운 외모였던 그의 모습이!
세월이 흐른 탓일까.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어? 너도 삼수?"
"응..."
우리는 나이가 같았기에 서로가 삼수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그냥 저냥. 네가 이 학원에 다니는지 몰랐다.야."
참, 세상 좁았다. 그리고 비밀이란 없었다. 건너고 건너면 삼수하는지 다 알터.
(당시엔 삼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는 게 왜 이리 창피했는지 모르겠다. 흑흑.)
초등학교 친구를 여기서 만나다니!
그것보다도 내가 삼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1명 더 늘어나게 되었다니!으하하하!
재수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들켜버려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녀석도 마찬가지 였으리라.
그래도 고향친구라 무척 반가웠다.
십년이면 금수강산도 변한다던데 녀석은 초등학교때의 그가 아니었다.
키도 나보도 더 컸고, 훨씬 멋있어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삼수생활을 하며 가끔씩 만나 서로 힘을 불어넣어주고 위로를 해주었다.
녀석과 마주칠 때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욱아, 너 이번 달 모의고사 잘봤어? 너 초등학교때 반에서 공부잘했잖아."
" 망쳤다...(아놔..그때는 그때고 이눔아.. --;지금은 성적이 그지같다구 임마..)"
"너는 몇 점 나왔냐?"
"나 000점이야."
듣고는 놀랐다. 녀석은 점수가 나보다 훨씬 높았다. 상위권 대학에 갈 정도의 점수였다.
헉..이런..나는 그때도 겨우 하위권 점수였는데 말이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그때 내 스스로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렇다. 크크.하하. 별 것(?) 아닌 것에 위축되고, 작아지는 것.
고향친구를 만나서 반가웠지만, 또 처지가 역전되어 있는 모습에 씁쓸하기도 했다.
저녁에 고시원 자취방에 돌아가 불을 끄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친구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만 들 줄 아는데 씁쓸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재수학원을 떠난후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당시 공부를 열심히하고 모의고사성적도 꾸준히 잘나왔으니 아마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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