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 관매도 마을 돌담길따라 걷다보면 옛 이야기를 간직한 할머니들과 만날 수 있다.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을 잡으면 온돌방 아랫목처럼 뜨뜻한 삶의 이야기들이 혈관을 지나 가슴에 전해진다. 때론 그 이야기들이 눈물샘에 고여 울컥해지기도 한다. 2월 28일 섬청년탐사대원으로 관매도 관매마을을 찾은 날이 그랬다.
"이제 죽을 날만 남았지 뭐…영감은 작년에 먼저 떠났어.."
배추 밭 흙을 호미로 고르고 있던 할머니는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진달래빛 팔토시를 찬 팔뚝을 무릎위에 힘없이 떨어트렸다. 잠시 먼데를 바라보시는데...
"저어~기 노오란 꽃 피었네..저게 뭐시더라. 응...유채꽃…."
할머니는 관매도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87년간 쭉 살아오셨단다. 할머니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딸들은 목포에, 아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단다. 지금은 홀로 살고 계신 할머니. 젊었을 때 이야기좀 해달라고 하니까 수줍게 웃으신다.
"옛날에는 베 잘 짜고 미역 잘 감는 며느리가 일등 신부감이었어. 그걸 못하면 며느리도 안 삼았지. 나는 관매도에서 시집갔어.여그서 자식들 낳았지."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하루하루 저걸 신고 밭을 일구며 자식 넷을 키워내셨으리라.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할머니는 은색 폴더폰을 꺼내들었다. 얼굴 주름 사이사이 웃음꽃이 고개를 내미는 걸 보니 아들인가보다.
"몸 조심혀라, 몸 건강한거시 제일 복이다잉~"
여느 부모처럼 할머니는 자식걱정을 먼저 하셨다.
인사를 드리고 솔숲을 향해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는데..할머니의 쪼그려 앉은 모습이 꼭 몸빼바지를 입은 마침표(.) 같았다. 할머니가 삶의 마침표 언저리에 있는 듯 했기 때문일까.
다시 할머니가 호미를 탁 들어올리는 순간 꼭 몸빼바지를 입은 쉼표(,) 같았다. 할머니의 삶은 계속 되는구나 싶어 다행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냥 마음이... 왠지 마음이 슬퍼졌다. 관매도에는 봄이 오고 있었으나 동시에 떠나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날 저녁 늦게 대전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출근했더니 관매도 해변의 잔잔한 파도소리대신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귓가에 부딪혔다. 컴퓨터 전원 버튼을 켜고 비밀번호를 치기위해 키보드 자판을 바라보는데.. 오른쪽 밑 마침표(.)에 자꾸 시선이 갔다. 할머니의 쪼그려 앉은 뒷모습일 수도, 훼리호에서 바라본 관매도의 옆 모습일지도 몰랐다.
하루종일 이런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살아 있다는 건 참 좋은데..살아간다는 것은 왜이리 슬픈 걸까...'
-섬청년탐사대 1기 김기욱, 자취방에서 끄적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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