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안 건 최근이다. 사실 오래 전 그를 만났다. 영화<원더플라이프>를 통해서.
그때는 몰랐다. 이 감독의 작품인줄은. '사람에게 추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원더플 라이프>.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소중한 추억을 하나 골라주세요"라는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죽고나서 도착하는 중간역'림보'(?)에서 각자 소중한 추억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저마다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면 림보의 직원들이 그 장면을 영화로 만들어 상영해준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때 일반인들을 찾아가 어떤 추억들을 떠올릴지 조사했다고 한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이 영화의 장면들을 굉장히 인상깊게 봤다. 내가 죽은 후 떠올릴 소중한 추억은 무엇일까. 물론 죽고나면 떠올릴 수 없겠지만,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그의 영화는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가 한때 세상에 대한 진지한 시선을 담는 다큐멘터리를 찍었기 때문일까. 그의 영화들을 보면 일상속 인간 감정의 다양한 모습과 그 이면을 잘 꿰뚫어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걸어도 걸어도>도 그의 작품인데,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수작이다. 가족간의 얽힌 감정의 응어리들을 서로 살아있을 때 풀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언제나 어긋난다'라는 메시지.
"지금 돌이켜보면 <걸어도 걸어도>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제 나름대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리하다 영화로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질질 끌려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웃을 수 있는 영화를, 건조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식이 있어서 드라이한 홈드라마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8쪽 영화<걸어도 걸어도>에 대해 말하는 부분-
무엇보다 영화<아무도 모른다>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니시스가모 네 아이 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가족의 유대가 희미해져가는 도시의 어두운 면을 그렸다. 담담하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싶었던 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든가, 어른은 아이를 이렇게 대해야 한다든가, 아이를 둘러싼 법률을 이렇게 바꾸어야한다는 등의 비판이나 교훈이나 제언이 아닙니다. 정말로 거기서 사는 듯이 아이들의 일상을 그리는것. 그리고 그 풍경을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를 통해 그들의 말을 독백(모놀로그)이 아닌 대화(다이얼로그)로 만드는 것. 그들 눈에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 제가 원했던 건 이러했습니다.
-190쪽, 영화<아무도모른다>에 대해 말하는 부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자서전<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게된 것도 어쩌면이런 영화들과 맺은 인연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서전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던 시절 다큐멘터리에 대한 숱한 고민들이 기록돼 있다.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것일까. 사실, 진실, 중립, 공평한 생각?
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 대한 철학을 들여다보는 통로를 열어준다. 그가 작품을 만들면서 했던 생각들을 영화와 연결시켜보면 영화에 대한 깊이가 더해진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다."
이런 소리가 예전부터 텔레비전 현장에서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큐멘터리 방송을 제작해 보니 사실·진실·중립·공평과 같은 말은 매우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란 '다양한 해석가운데 한 가지 해석을 자기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요. 예전에 닛폰 TV에서 <논픽션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방송을 만든 우시야마 준이치 씨는 "기록은 누군가의 기록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시기에 사와키 씨의 방법론을 경유하여 '나'의 시점으로 말하는 방법론에 이르렀던 저와 '다큐멘터리란 이래야 한다'라는 세간의 말 사이의 괴리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113~114쪽-
살의나 전쟁 등 자신의 사고 바깥에 있는 것에 대해, 그 방송을 본 사람이 자신의 내부에서 바르게 상상력을 가동시켜 가는 것. 분명 텔레비전에는 그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표현이 결여되어 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과 마주치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 최종적으로는 공동체 자체와 개인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공재인 텔레비전이 해야 할 역할이다.
-156쪽 <론자> 2005년 4월호-
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실을 그린다"는 말을 듣지만, 저 자신은 '남겨진 사람들'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223쪽-
생명은 / 그 안에 결여를 품고 /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247쪽요시노 히로시의 시 <생명은> 일부, 영화<공기인형>의 본보기로 삼은 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종종 '영상은은 자기표현인가 메시지인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적어도 저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은 결코 '나'의 내부에서 태어나는게 아니라 '나'와 '세계'의 접점에서 태어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상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치므로 이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만나기 위해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기본이며, 그것이 픽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요."
-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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