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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살한 오후 4시 김범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로 하누리강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왠지 모르게 끌렸다. 이 질문은 행복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이 시작되기전에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왠지 모르게 끌렸다. 이 질문은 행복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듯한 뉘앙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이 시작되기전에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과연 행복한가?
이 질문은 우리가 살면서 수십차례 던지는 것이다. 행복을 작은 것에서 찾기 시작한다면 나는 분명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을 큰 것에서부터 찾게 된다면 나는 불행하다. 더불어 그 행복을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찾으면 나는 불행하고, 정신적인 것에서 찾으면 조금 더 행복한 정도이다. 행복은 쉽게 잡히지 않는 날다람쥐같은 녀석이다. 행복의 기준도 다양해서 나는 과연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
'행복'이라는 뜻의 'happy'는아이슬란드어 happ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happ는 기회, 행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행운처럼 잘 찾아오지 않는 그 무엇인가보다. 눈앞에 닥친 기회를 번번히 놓치고 마는 것처럼, 눈앞에 있는 행복도 번번히 알아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행복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대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행복했던가?
한번뿐인 20대 청춘을 살고 있으므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마음껏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질문 자체가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처럼 고개를 숙이고, 자동녹음기라도 된 듯 교수님의 말씀들을 받아 적을땐 정말 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내 생각'이라는 걸 잡아먹는 과거 대학자들의 수많은 이론들이 머릿속을 괴롭힌다. 물론 그 창조적인 이론들에 들인 정성은 인정하고 존경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쓰지도 않는 가구를 집안에 들여다 놓듯, 억지로 머릿속을 이것저것으로 채우고 있자니 괴롭다.
결국엔 나 자신과 타협한다. 수많은 불행한 사람보다는 나는 좀 더....
결국엔 나 자신과 타협한다. 수많은 불행한 사람보다는 나는 좀 더....
행복한 편이겠지.
하고 말이다. 뭔가 석연치 않다. 행복을 말할땐 판단의 기준은 주관적이고 분명하지 않다. 억지로 나의 기분을 '행복'이라는 단어에 꿰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의 삶에 대해 표현할 수 있기도 하다.
즐겁다. 기쁘다. 신난다. 흥미롭다 등등의 표현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쓸 땐 망설여진다. 나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아닌가에 대해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다고 말했을 땐, 나머지 수많은 불행들이 떠오른다. 불행하다고 말했을 땐, 나머지 수많은 행복들이 떠오른다.
어찌보면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수명이 길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행이 '훅' 바람을 불면 저 멀리 나가 떨어져 버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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