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침대에서 읽다가 재미있어서 킥킥킥 웃었다. 고딩시절 추억과 아빠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게하는 시집이었다.
정덕재 시인이 새 시집<나는 고딩아빠다>를 냈다. 지금은 대학생인 아들의 고딩시절 이야기와 함께 시인이 아들과 나눴던 대화들이 유머스럽고 유쾌한 시로 재탄생했다. 아빠가 시인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매일 시적 표현과 운율을 갖춘 잔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적어도 시 한편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은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의 입장에서 시인인 아빠가 자신의 고딩시절이야기를 시로 써준다는 건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만약 아버지가 잔소리를 한편의 시를 써주셨으면 곱씹어서 읽어봤을텐데 말이다.
시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쓰는 자신의 고딩시절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나이를 먹어 갈수록 관계의 친밀도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알려주고 있다. 시집에는 내 고딩 시기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생각이 담겨 있다. 시를 읽다보면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등하교할 때 아빠 차에서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시에는 나와 아빠의 이야기뿐만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시인의 아들 정현후 발문-
시인의 아들은 '아빠는 나에게 불량 식품같은 느낌이다'라는 말과 함께 발문을 시작했다. 킥킥킥. 이 대목에서 웃었다. 절묘한 표현이었다. 시인의 아들은 시인을 들었다놨다하면서 중간에 훈훈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관계의 친밀도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
아들의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 또한 자식을 응원하면서도 걱정하는 여느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녀석을 지켜본 경험과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시로 옮겼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와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들의 생활과 실제로 관련된 것들이다. 녀석은 학교에 다니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생각했다. 친구들과 축구공을 차며 탄력을 잃은 공의 운명을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빈 가방이 무거웠던 것은 짊어지고 가야할 인생의 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의 생활을 바라보며 자주 길을 생각했다. 이정표 없는 인생의 길과 길 밖의 인생을 그려보았다. 비슷한 세대를이 만들어 낼 세상의 아름다움 혹은 비극적인 미래를 떠올렸지만, 그 또한 무기력한 상상이었다.
-정덕재 시인의 말-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시를 꼽으라면?
<개 짖는 밤 오줌을 누며>, <봄날의 오리>, <둘다 땡땡이>, <새벽 3시의 거실>, <가방은 대체로 비어있다>.
어린시절 동네 뒷산으로 아버지와 참새를 잡으러 갔던 추억. 나뭇가지로 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 까치를 기다렸던 순간. <개 짖는 밤 오줌을 누며>를 읽으며 오히려 아버지와 이런저런 소소한 추억이 떠올랐다. 물론 논밭에 오줌을 수없이 놓기도 했다.
<새벽 3시의 거실>이란 시는 왠지 모르게 슬펐다.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꿈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는 빈 운동장을 지나 삶속으로 걸어들어가야하는 직장인의 모습도 생각났기 때문이다.
<둘다 땡땡이>는 직딩의 로망을 자극하는 시였다.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 고딩시절, 나도 숱하게 땡땡이를 쳤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는 그런 적이 없다. 땡땡이를 칠 수 없는 인생은 꽤나 퍽퍽하고 무미건조한 것 같다.
<가방은 대체로 비어있다>는 이상하게도 내 통장잔고를 떠올리게 했다.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내 통장은 대체로 비어있다'라는 시를 썼을듯하다.
<봄날의 오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재미있게 읽었다. 맛있는 회를 안주삼아 술을 잔뜩먹고 집에 들어와 토를 했던 날. 그럼에도 맛난 회와 술을 끊지 못하는 나의 모습도 생각났다. 아...그런데 갑자기 오리고기가 먹고싶다. ㅋㅋㅋㅋ. 지금은 오후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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