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회 작가<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소주 한 잔 생각나는 책이다. 문득 술 먹고 싶어지는 책이다. 내가 어른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게 '너는 이제 어른'이라고 말해줬는지 모르겠지만, 그 '어른'이라는 생명체가 된 이후로 나의 속마음과 힘듦을 터놓고,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혼자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고, 혼자 인생의 짐을 짊어지려고하고, 약해보이지 않으려하고, 그렇다고 없어보이고 싶지도 않고, 그러는 것 같다. 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서 술 한잔하고 싶은데 딱이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순간, 딱히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을 때, 이럴 때는 조용히 마음을 위로해주는 책을 읽으며 숨 죽일 수밖에. 한숨을 내쉬며 천장 한 번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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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랑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기적이기만 한 둘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다 그런 법이라면 철없는 두 사람을 말없이 감싸준다.
-211쪽-
보노보노 :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안 좋은 거야?
너부리 : 당연하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
-180쪽-
야옹이 형과 또 한번의 결투를 마치고 피투성이가 된 큰곰 대장은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가야. 아빠는 또 야옹이 형에게 졌단다.
하지만 아들아, 졌을 때의 아빠 얼굴도 잘 봐둬야 한다.
잘 봐라. 이게 졋을 때의 아빠다.
-156쪽-
자기 마음과는 다른 대중들의 의견에 기가 죽어서,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후배에게 디제이 배철수 씨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무조건 오래해. 꾸준히 계속하다보면 나중에 그런 이야기는 다 없어져."
-120쪽-
포로리 아빠 :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어기는 거 아냐.
포로리 : 어긴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예요.
포로리 아빠 :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을 잊어버리는 거 아냐.
젊은이들한테는 다음 달, 내년도 있겠지만
노인들에게는 지금뿐이라고.
언젠가는 나도 아빠가 보고 싶어서
가슴이 미어질 때가 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모르고 싶다.
아빠와 나에게도 지금은 지금뿐이라는 것을
자꾸 모른 척하고 싶다.
-105쪽-
따지고 보면 재미없는 인생이 이상한 게 아니라 계속 재밌기만 인생이 특이한 거다. 인생이 늘 새로운 재미와 자극으로 넘친다면 그 인생 어디 피곤해서 살겠나. 가끔은 아무 일 없고 지루해줘야 새로운 재미도 느껴지는 것을. 심지어 아무 일 없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을.
-97쪽-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이 말하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다른 '금세'를 할 뿐이다. 어른은 금세 포기하고, 금세 후회하고, 금세 체념한다. 처음엔 그런 게 참 싫어도 어느새 그 마음 역시 금세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넘길 수 있게 된다. 보노보노의 염려처럼 금세는 나쁜 게 아니다. 금세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꼭 필요한 거다.
-86쪽-
얼마전 엄마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늘 당당하던 엄마는 갑자기 도화지 같은 얼굴을 하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거나 대화 자체를 피했다. 언젠가부터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러더니 훌쩍 집을 떠나버렸다.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도 돌아왔을 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 막막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있었던가. 서로 위로라는 걸 해본 적이 있어나.
-75~76쪽-
나 역시 칭찬이 좋다. 칭찬 들을 때마다 으쓱해진다. 그러므로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겸손한 척하거나 부정하거나 더 큰 잘난척을 보태지 말고 그저 겸허히 기뻐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래야 더 해줄테니까. 그러니 칭찬을 들을 때마다 입 찢어지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해야지. 그게 민망하면 슬쩍 차라도 한잔 사줘야지. 그것도 왠지 노골적으로 느껴지만 마음속으로 칭찬한 사람을 많이 아껴줘야지.
-51쪽-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는 미움받은 일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 거다. 가뜩이나 애정 결핍이 될 지경인데 미움까지 받다니 상상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우리도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나. 시간만 나면 흘겨보고 뒤에서 욕하고 행여 잘되기라도 하면 다리 뻗고 잠도 못 자면서 다른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는 그만큼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는 데에도 그만큼의 확실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41쪽-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너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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