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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나는 팥빙수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시간이 흐르면 녹아요.
가로등 불빛에도 녹습니다.
수십억 년을 달려온 별빛 때문에도 녹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때문에도 녹습니다.
입김에도 녹습니다.
따뜻한 미소 때문에도 녹습니다.
나방의 날개 짓 때문에도 녹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녹습니다.
나를 만들 던 아르바이트생의 가녀린 한 숨에도 녹습니다.
옆테이블 연인들의 웃음소리에도 녹습니다.
한 청년이 뜨거운 가슴으로 꿈을 이야기할 때도 녹습니다.
어쩌면 녹는 다는 건 세상 모든 일과 관계하고 있는 듯합니다.
누군가 누군가를 따스하게 안아줄 때도 녹습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스하지 않다면 저는 녹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나는 팥빙수입니다.
제 안에 뜨거운 가슴이 있는가봅니다.
그래서 녹는 거겠죠.
나는 아직도 내가 녹는 이유를 다 찾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다 찾게 되면 완전히 다 녹아 없어지겠지요.
나는 사람 앞에서 녹는다는 단순한 진실.
나는 그것을 시킨 사람 앞에서 녹습니다.
녹는다는 건 신기합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차갑고 얼려 있던 것이 주변의 따스함을 못 이겨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일은 당연한 자연현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분명 가로등 밑에서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열의에 찬 날개 짓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신중하게 녹기로 했습니다.
주변 세상을 온 몸으로 보고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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