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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연구/스토리텔링노하우

영화<킹덤 오브 헤븐>에서 던져진 신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 물음

영화<킹덤 오브 헤븐>에서 던져진 신과 종교에 대한 근본적 물음

 

리들리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 수업시간에 이 영화 한편을 보고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사실 바로 달려간 것은 아니고, 그 다음 날 걸어갔다. 책 두 권을 집어 들었다. W. B 바틀릿의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와 아민 말루프의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라는 책. '십자군과 이슬람 군, 이 둘이 200년 동안 질긴 싸움을 발인 끝에 대체 누가 이겼을까?'라는 궁금증이 도졌기 때문이다. 


1. 이슬람과 서구 문명이 벌인 십자군 전쟁의 승자는 있을까?
 

전자의 책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며, 이 전쟁을 동방을 향한 서방의 침략과 약탈의 역사로 해석하고 있었다. 서양인의 시각이 아닌 역사가의 공정한 눈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후자의 책은 아랍인의 입장에서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아랍인의 눈에 비친 십자군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잔인함과 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아랍 내부의 모순과 결함을 솔직하게 까발리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 역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 책들을 읽고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다 읽어보니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패자도 없었다. 오로지 숱한 전쟁의 승리와 패배사이에 인간의 잔혹한 고통과 신을 향한 번뇌만이 황폐하게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더라도 승자는 없었다. 예루살렘을 지키려는 발리안과 이를 정복하려는 이슬람의 살라딘은 처절한 싸움 끝에 휴전협정을 맺었고, 예루살렘 시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또 영화 속 어디에서도 신의 신성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비린내 나는 시체들의 그림자만 가득했다.

결국 이 영화가 전해주려는 것도 신을 두고 싸우는 인간군상의 어리석은 모습을 되돌아보라는 게 아니었을까? 영화는 처참한 전쟁터를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대화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핵심 메시지를 전해준다.

 

바로 휴전을 맺은 후, 무너진 성을 뒤로하고 발리안이 살라딘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에서 말이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죠?"

머뭇거리는 발리안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허탈한 표정을 짓는 발리안에게 다시 돌아서며 말한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살라딘의 말이 참 걸작이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 아, 얼마나 허망하고 짠해지는 대사인가. 그렇게 피를 흘리고, 살육하고, 서로 증오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라니! 

이 영화는 내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2. 신 그리고 종교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다?

"신 그리고 종교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렇게 대답해 주는 듯 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은 그저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전쟁 역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위한 가슴 아픈 수단임을 깨닫는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던, 신성을 지켜내던 결국 희생당하고 이용당하는 건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은 하늘에서 껄껄 웃고 있을지 모르나, 땅위의 인간들의 가슴엔 '신'이라는 이름의 비수가 꽂혀 있다. 그리고 그 비수위로 피눈물이 흐른다. 슬펐다.

사진출처 : http://yorksider.ddisk.com/
신을 믿기 전에, 인간들끼리 서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믿는 다음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끼리 서로 증오하고, 죽인 다음에 신이 존재하면 뭐하나...

신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믿으면서, 왜 예루살렘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진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하면서 왜 눈에 보이는 성지를 두고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

사진출처 : http://yorksider.ddisk.com/

책<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탕크레드는 바위의 돔(가장 오랜 이슬람의 유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지. 이 사원이 서 있는 바위는 이슬람교도와 유대인 모두에게 신성한 곳이다. 이슬람 전설에 따르면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유대교의 전통에서 히브리 민족의 시조이자 초대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는 장소도 바로 이 곳이다.- 옮긴이)을 약탈했는데, 이는 무슬림들에게는 신성모독의 의미를 지닌 행위였다.
- p 161,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


바위의 돔은 예루살렘 안에 이슬람과 유대인 모두에게 성지인 곳이라고 말이다. 더불어 그리스도교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성지다. 그래서 서로 그곳을 점령하면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되고, 급기에 전쟁의 불씨가 된다. 모두에게 성지라는 것이 전쟁의 원인이라면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신을 네 것, 내 것이라는 개념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의 신과 관련 된 것이니, 너희들은 침범하지마'라고 말이다.

신과 종교로 인한 인간의 비극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과연 신과 종교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평화의 날이 오기나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떠오르기 전에 다음 질문이 연이어 솟아오른다.

3. 우리는 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영토와 재물처럼 신을 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영화에서 다음 티베리우스가 인간들을 향해 쓴 소리를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처음부터 신은 그저 핑계였을 뿐, 이 전쟁은 영토와 재물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 대사가 주는 뼈아픈 질책은 실제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니 수긍이 간다.
언뜻 보면 성지를 되찾기 신성한 전쟁으로 보이는 십자군 전쟁도, 결국 인간의 탐욕과 재물욕이 빚어낸 비극이었음을 많은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실제적인 이득도 있었다. 십자군은 서구 군사지도자들의 폭력이 그리스도교 세계에 커다란 위험을 가하고, 교회의 안녕과 충돌할 수 있었던 지역인 서유럽 영토로부터 그들의 공격을 몰아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의 호전적인 신념을 그리스도교 세계의 적들에게로 돌릴 수만 있다면,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를 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이것이 달성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교 사회의 모든 파당에게, 특히 교황권에게 이로울 것이었다.
-p 74,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위 내용을 보더라도, 신은 그저 핑계였을 뿐,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벌인 전쟁이었다. 

"우르바누스는 자신의 메시지의 요점으로 나아갔다. 그리스도 안의 같은 형제끼리 사악하게 피를 흘리는 짓에 더 이상 탐닉하지 말고 대신 신앙의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무기를 집어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였다. 
-p 77,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위 구절을 보면서, 인간의 의식 혹은 한 문명을 지배해버리는 '신'이라는 존재 그리고 종교의 무시무시한 영향력에 몸서리쳐진다. 아니 인간 내부에 있는 잔인한 폭력성과 끝없는 욕망이 너무도 무섭다. 신앙이 다른 적들을 죽이는 의무조차 신성한 것이 되어버리는 종교에, 그것을 믿는 인간들에게 치가 떨린다.

4. 신을 모욕한 것은 오히려 그 시대 종교인들 자신이다!

그러니 이미 천 년 전에 신은 죽은 것이 아닐까? 영토와 재물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신, 탐욕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버린 신, 문명권이 다르면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신이라면 그 신은 이미 죽었다.

"십자군 전쟁은 잔혹한 살육과 약탈, 문화 유산의 파괴로 점철된 추악한 전쟁이었다. 십자군의 약탈 대상은 이슬람 교도와 유대인에 머물지 않았다. 같은 그리스도 교도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십자군이 소아시아 지역에 일시적으로 건설했던 국가에서 토착 그리스도 교도들은 이교도의 통치 시대보다 훨씬 가혹한 수탈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살라딘이 예루 살렘을 탈환했을 때, 그곳 그리스도 교인들의 생명을 보호했던 이슬람의 고나대한 정책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p8,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역사를 통해 증명되듯이, 십자군 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추악한 전쟁이었다. 신을 모독한 것은 오히려 이슬람교도들과 그리스도교 종교인 자신들이었다. 세상에 신앙이 다른 적들은 죽여도 좋다는 괴상망측한 종교 논리가 말이나 되는가? 비록 서구의 공격이 먼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서구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에 모두에게 죄가 있다. 

그런데 무신론자인 내가 이런 아픔에 고민하고, 머리 아파해야하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내가 무신론자라고 해서 신이 무엇을 하든, 신을 믿는 이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신경 안 써도 될 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종교 전쟁을 통한 비극은 신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인든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직도 종교 때문에 싸우고 있는 서구와 이슬람의 모습을 후세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참고 서적 >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2002, 아침이슬
⌜십자군 전쟁,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W.B 바틀릿 지음, 서미석 옮김, 2004, 한길사


베스트 글에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카테고리에서 받은 첫 베스트네요. 기분 좋은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