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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년 대학교 2학년때 가을에 충북 영동으로 구비문학 답사를 다녀온 후 썼던 글입니다. 컴퓨터에 잘 묵혀둔 것을 장독에서 된장 내오듯 꺼내 봅니다. 저희과 교수님이신 황인덕교수님과 함께 영동군에 오랜 세월 살아오신 할머니 분들을 만나고 왔었죠. 우리네 옛 풍경을 살펴볼 수 있기에 2년이 흐른 지금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충북 영동군 할머니들이 총각에게 들려준 옛 이야기
충북 영동군 할머니들이 총각에게 들려준 옛 이야기
- 옛이야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오다 -
이야기 = 장독의 된장, 고추장, 김치처럼 세월을 견뎌 푹 담겨온 것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묻어두거나 다른 이에게 들려준다.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등등. 그 이야기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웃게 만들거나 가슴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 할머니 무릎 팍에 앉아 들었던 옛날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할머니들도 호롱불 밑에서 자기 어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어쩌면 그 호롱불처럼 바람이 불면 곧 사라질 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들은 언제 이 세상을 떠나실지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을 지금 찾아가 듣지 않는다면 또 언제 들을 수 있으랴. 그 이야기들은 사서에 기록되는 역사도 아니고, 우리네 민초들의 가슴속에 장독의 된장, 고추장, 김치처럼 세월을 견뎌 푹 담겨온 것을.
지금이 아니면 다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에 구전되는 옛이야기들에 대한 현장조사와 기록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총각! 도깨불 봤어? 안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우리가 현장조사를 떠난 곳은 충북 영동군 일대 노인 회관 세 곳이었다. 오후가 돼서야 회관 문 앞에 할머니들의 신발이 사이좋게 놓여 있었다. 할머니들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에는 내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도깨비불 이야기에서는 가슴을 조렸고, 시집살이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찡하기도 하였다. 처음엔 오랜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하다고 말하기를 꺼려하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는 곶감하나처럼 달콤하게 무르익어갔다.
여기에 그 때 만나 뵌 할머니들의 소중한 옛 이야기들 기록해 보련다.
이응년 할머니(70세?) 녹취록 / 충북 영동군 남전리 일대 이야기
1. 보쌈이야기
“옛날에는 힘센자가 중간에 보쌈을 가로챌 수 있었지~ 주막에 앉아 술을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보쌈 무리가 오고있더라네. 그 술먹던 양반이 달려가서 그 보쌈을 가로 채 버렸지. “
“옛날에는 힘센자가 중간에 보쌈을 가로챌 수 있었지~ 주막에 앉아 술을 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보쌈 무리가 오고있더라네. 그 술먹던 양반이 달려가서 그 보쌈을 가로 채 버렸지. “
2. 시집과 관련된 재담
“옛날에는 부자인척을 했어. 볏단을 높이 쌓거나, 남의 집 소를 빌려다가 놨거든. ”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갔는디. 그때는 나이어릴 때 강게~ 어떤 집에 시집을 갔는디 그 신랑이 옷을 벗길려는거래. 그래서 도망나왔나 그러드라고. 두 번째 시집갔는디 거기서도 이놈의 신랑이 옷을 벗길려고 그라네. 긍게 또 도망나왔다 안그려(한바탕 웃음)”
3. 늑대 이야기
“6.25사변 이전에는 늑대와 여우새끼가 많았어. 그 이후에는 다 사라졌지. 무시워서 고개를 함부로 못넘었당게”
그 중에서 도깨비이야기가 제일 흥미로웠다. 옛날에 만화 '은비까비(?)'에서 자주 만났던 도깨비들. 수년의 세월을 지나 도깨비 불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박판래 할머니(88세) 녹취록/ 충북 영동군 양강면 만개리 숭주골 이야기
1. 이거리 잣거리 노래 - 2명의 사람이 발을 서로 엇갈리게 해놓고 하는 놀이
이거리 잣거리 굿거리 천사만사 굿거리
콩하나 팥하나 양기 장기 가락구 적구 죽대 막대
고향 감토 풀무 때꿍
2. 할머니 바위, 할아버지 바위 / 선돌(동네 앞 어귀에 있는 돌)
3. 마을 지명의 유래
① 공수동(공으로 먹고산다- 살기 좋은 곳) ② 놋지미(놋그릇과 관련)
③ 굴고개(나중에 굴나고) ④ 원두골(원없이 먹고 가는 곳)
⑤ 배무루(배 띄우는 곳)
4. 도깨비 불 이야기 - 개인적으로 정말 흥미로웠다
① “어렸을 적에 도깨비 불이 많이 났었지. 어느 곳은 부자들이 잘 살다가 다 망했는디 그게 다 도깨비 불때문이란 얘기가 있어.”
② "도깨비터가 이 마을 근처 미봉초등학교 어디깨에 있지 아마. 도깨비터는 예로부터 부자가 되는 땅이라고 했어."
③ “밤중에 술을 잔뜩 먹고 고개를 넘으면 도깨비가 나타난디야, 그라믄 그 도깨비가 상투를 풀어서 서낭당 에 메달아 놓든디야. 다음 날 봉게 그 옆에 빗자루 몽뎅이가 놓아져 있더라네.”
도중에 할머니들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절로 코끝이 찡해졌다. 총각들은 모르는 고충을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은 오랜 세월 인내하고 살아오셨다.
그 밖의 충북 영동군 남전리 일대 노인회관 할머니들 이야기 녹취록
1. 호랑이로 추정되는 짐승을 본 이야기
움터골이란 곳에 고사리를 끊으러 갔지. 5명이서. 그런디 올라갈수록 ‘탁, 탁’ 하는 소리가 나는거여. 아이구 호랑이가 있었는 가배. 호랑이가 올라오지 마라고 꼬리를 ‘탁, 탁’ 쳤던 것일 꺼여./
2. 시집살이
할머니1> 옛날에 시집살이를 하는디 부엌에서 그릇을 쏟았어. 근디 그것이 일본에서 들어온 좋은 놈이었거든. 그걸 쏟았으니. ‘성님 어떡한다요“해도 뭐 그랬지. 그때 시아버지가 그러드라고 ’야야 작은애기 놀랐는 가보다. 솔잎따다가 물타주어라” 하셨거든. 놀랄때는 솔잎물이 최고라야.
할머니2> “나는 15살에 시집갔어. 저 쪽 동네에서 이 쪽 동네에서 넘어 온겨. 내 신랑은 17살이 었제. 공줄 잡을려고 빨리 시집보냉겨. 그때는 왜놈들한테 안끌려 갈라고 그랬제. 그때는 배를 골았어. 없어서 못먹었제. 뭘 잘못해오면 삐졌는지 시어머니가 휑하고 돌아서더라고“
3. 공기놀이 - '반주깨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4. 이거리 잣거리 노래
이거리 저거리 갓거리~(어쩌고 저쩌고)~짝다리 히야리 도리 짐치 사리육
한거리 두거리 갓거리~(어쩌고 저쩌고)~인사 만사~ 똘똘 말아 장두칼)
5.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도깨비 생김새
귀가 크고, 다리가 없다. 얼굴만 있고 몸통은 없다.
할머니들의 가슴속에 담긴 옛 이야기 발굴의 중요성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요즈음 신윤복과 김홍도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살인범 유영철의 이야기는 ‘추격자’라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한다.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스토리텔링’도 이야기가 지닌 힘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영화 속 이야기는 한 나라의 문화콘텐츠로써 해외로 수출되어 큰 수익을 창출 할 수도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마을앞에 세워져 있는 장승, 솟대, 선돌에도 이야기 하나쯤 담겨있고, 말없이 강을 굽어보는 줄바위, 울바위에도 메아리처럼 옛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할머니 무릎팍에 기대어 들었던 이야기들이 영화관, 텔레비전, 소설속으로 옮겨갔지만, 직접 목소리를 통해 전해 듣는 구수함과 따뜻함을 당해낼 수 있을까?
각종 저장매체, 영상, 녹음기술이 발달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서 발굴하지 않는다면 아직 못다한 옛이야기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가슴속에 묻히고, 다시 흙속에 묻히어 영영 꺼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과학기술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 때 쓴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그 때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 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까이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분들께 옛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 보는건 어떨까요? 몇 억년이나 된 화석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삶의 무늬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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