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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리뷰

연암 박지원은 몸으로, 두 발로 열하일기를 썼다 [고미숙 고전 평론가 강연후기]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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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연의 매력은 삶을 향한 깊이 있는 질문들을 가슴속에 잔잔히 흐르게 한다는 점에 있다. 29일 대전시청 하늘마당에서 펼쳐진 고미숙 선생님의 강연도 그런 매력을 품고 있었다.  강연의 주제는 '열하일기에서 미래의 비젼을 탐구하다'. 길위에서 몸으로 부딪혀 가며, 청나라 사람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던 이야기캐는광부 연암 박지원. 그야말로 내 블로그필명인 이야기캐는 광부였다. 



 
1.연암의 강철체력에 감탄하다
 

"여러분, 저는 연암 박지원의 체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정말 체력이 좋았나봐요."
고미숙 선생님은 길위에서 우주를 사유했던 연암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내셨다. 그녀가 연암에 대해 감탄했던 것은 열하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의 '체력'에도 있었다.

연암 박지원은 압록강에서 연경까지 약 2천 3백여 리를, 연경에서 다시 열하까지가 700리를 이동했다고 한다. 1리가 약 0.39km이니, 계산하면 1170km. 그가 살았던 연암골에서 압록강까지의 거리를 뺀 것이니 실로 대단한 수치다. 그런 과정속에 명작 '열하일기'가 탄생했다. 열하일기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열하의 독특한 풍습이 담겨있다. 연암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 기록한 당시의 삶과 문화가, 그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체로 기록된 것이다.

2.공짜로 청나라 문화를 구경할 수 잇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연암
 

사실 연암은 땡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삼종 형(8촌뻘 되는)의 빽(?)으로  
당시에 청나라 건륭황제의 축일을 맞아 수행원 자격으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운좋게 따라간 공짜 여행이나 다름없다. 딱히 하는 일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즐기는 기분으로 주변을 여유롭게(?) 통찰할 수 있었고 한다.


-고미숙 선생님의 책<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 나오는 연암의 이동경로.

그런데 그는 막상 중국땅에 가서는 개고생을 했다. 중국땅에 들어섰던 때는 찌는듯한 무더위와 폭우가 잦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하루에 8개의 강을 건너기도 했다. 폼나는 수행원이라기보다는 특수부대의 극기훈련에 가까웠다는 고선생님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다. 연암은 몇 백년이 흘러도 이렇게 사람을 웃기고야 만다.


3.길위에서 그 시대의 모든 것과 접속했던 연암
 

"연암은 그 시대의 모든 것과 접속하고 있었어요. 접속은 나를 편하게 하고 익숙한 것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 낯선 것, 이질적인 것과 만나는 것이 진정한 접속입니다. 그래야지 내 몸안에 깨달음과 스파크가 일어나거든요."

고선생님의 이 말씀이 주는 울림은 컸다. 연암은 열하에 머물면서, 지나가는 수레바퀴의 모양이며, 벽을 쌓아올린 형태, 길거리에서 오고가는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청나라 문화의 정수를 조선에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가 몸으로 부딪혀 겪었던 청나라의 문화이기에, 연하일기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은 통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조선의 선비들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지식과 지혜를 추구했다면 열하일기같은 글이 나올 수는 없을 터. 발로 뛰어여 좋은 글이 나오고, 직접 몸으로 체득해서 써내는 글들이 더 살아있고 맛이 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앞서 연암이 하루에 8개의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보면 체력이 고갈되어, 걷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열하일기를 써낸 것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4.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연암

연암에게는 지금의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필요없었다. 그는 탁월한 소통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가서도 현지 친구들을 만들어 달빛아래 술을 먹었다. 그들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들으며 기록했다. 그는 비장하고 엄숙하고 진지함을 버렸다. 그는 늘 유머를 잃지 않았다. 주막의 아주머니나 객관의 여인네를 만나도 너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청나라 사람들의 삶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어찌보면 대단한 넉살에다 철면피까지 겸비한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암은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고,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생명의 반을 포기하는 겁니다.'
연암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고선생님의 이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연암은 사람들과의 우정, 그리고 그 사람들안의 이야기를 생명처럼 여겼던 것이 아닐까.


-강연이 끝나고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 너무 좋았다.

5. 여러분도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과 끊임없이 만나세요


"연암 박지원의 생각은 이랬어요.. 길을 나서라, 길을 나서서 질문을 던지고,이 질문의 힘을 가지고 세상 모든 것과 만나라. 그러면 내 존재의 소외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다."

고선생님 말에 따르면, 연암은 프리랜서였기때문에 스트레스가 없었다고 한다. 청중들이 깔깔 웃었다. 연암이 프리랜서였다는 표현에 나도 웃었다.

"그는 길 위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자기 존재를 펼치는 일을 했어요. 여행 다니면서도 공무가 없었어요. 프리랜서 였죠. 정말 길위에서 길을 탐구했어요. 그래서 만나는 것마다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글이 되고 열하일기로 전해졌던 것이죠."

"여러분도 길 위에서 질문하고, 끝없이 새로운 세상과 마주치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강연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이라는 사람이 내 가슴속에 살아있기 시작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내 청춘의 롤모델을 발견했다. 이야기를 발굴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해학과 웃음을 잃지 않았던 연암 박지원을 말이다.


고미숙 선생님이 전하는 고전을 읽는 TIP
"여러분 너무 진지하게 고전을 읽으면, 힘들어집니다. 바로 뒷목이 뻣뻣해집니다.(웃음)
고전을 읽다가 너무 어렵다. 그러면 그 내용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던지 랩을 하든지 하세요. 고전을 가지고 재밌게 놀 줄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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