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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인류를 향해 잔잔한 깨우침을 주다, 웨이드 데이비스의 책<세상끝 천개의 얼굴>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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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웨이드 데이비스의 책<세상끝 천개의 얼굴>에 짬뽕국물을 쏟았다. 국물에 젖은 책장을 넘겼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어도, 국물에 젖은 책장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코끝이 매웠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물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이 책이 지금 이 순간 사라질지도 모르는 문화권과 인종 그리고 언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그 문화권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다. 비록 사진이지만, 읽는 내내 사진속 그들의 눈과 마주하고야 만다. 그래서 어느 순간 감정이입이 되어 그들의 삶속으로 걸어들어가고야 만다.



지금 이 순간에 사라지고 있는 것들은 많다. 누군가 지닌 생명의 불씨가 사그라들기도 하고, 누군가 켜놓은 촛불하나가 막 꺼지려고도 할 것이다. 어제 내린 눈이 녹고 있거나, 방금 흘린 눈물이 피부속에 스며들고 있거나, 밤하늘을 번쩍이던 별똥별이 이름모를 대지위에 스며들거나!

이처럼 지금 이 순간 사라지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앞서 말했듯이 수천년동안 지속되온 언어와 문화가 그러하다. 책<세상끝 천개의 얼굴>저자가 세계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부족들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문화권에 대한 이야기가 수놓아져 있다.

노상 침묵에 휩싸여 지내야 하고, 우리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어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노인들의 말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지혜와 지식과 내가 알고 있는 온갖 경이의 세계를 말할 기회조차 없는 것보다도 더 고독하고 쓸쓸한 경우가 또 있을까?
-17쪽-


저자의 이야기처럼, 말할 기회를 잃고 사라져가는 인류 혹은 그들의 문화권이 세상곳곳에 많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는 사이에, 그 밀림에서 수천년을 살아왔던 부족들의 터전과 그들의 문화권이 흔적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한 문화권의 '언어'는 그 문화권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후손들에게 물려주었거나, 앞으로 물려주고싶은 지혜의 저장고이다. 그런데 그 언어와 문화가 사라진다면 후손들은 그 소중한 보물을 한꺼번에 잃고 만다.



저자는 캐나다 북부, 아마존, 안데스산맥, 오리노코, 아이티 등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만난 사람과 문화들을 기록했다. 보르네오의 프난족, 케냐 북부의 유목민, 티베트인, 콜롬비아의 코기족과 아키족, 아리알족, 렌딜레족 등과 눈을 마주하고, 마음으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구'라는 한 울타리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우리가 '야만'이라고 부른 그들의 삶의 방식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나에게는 '문명권과 비문명권', '야만'과 '비야만'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우쳐 주었다. 서로 다른 문화권과 인종, 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지 지난 날 원시(?) 문명을 파괴했던 서구문명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땅에 살아간다면 한번조차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얼굴이 책속에 담겨있다. 그들은 유명인도 아니요, 돈많은 부자도 아니요, 뛰어난 학자들도 아니다. 단지 그들의 터전에서 자연과 더불어 오랜 시간 지구에서 함께 살아온 원시부족들이다. 책을 읽고나서는 '원시부족'이라는 표현도 조심스러워진다. 그들이 보기엔 우리 현대인들이야말로 '원시적'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펼치면, 걸어들어가 책속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밤새도록.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어느 부족들의 언어와 문화권은 사라지고 있다. 책속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문화권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책에 기록된 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다.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책장의 짬뽕국물이 다 마른 순간에도, 누군가의 슬픔은 마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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