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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위에는 딱풀 하나와, USB, 낙서노트, 포스트잇, 연필, 잡다한 책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한마디로 책상이 개판이다.하하.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살고 있다. 이런 누추한 곳에 있어도 불평하나 없으니 대견스럽다. 이 책은 저자인 고미숙 선생님 의 강연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책안에는 놀라운 사람이 한 명 살고 있었다. 바로 연암 박지원. 살면서 벗들과 달빛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던 연암. 저자가 연암의 열하일기와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너무 잘 설명해주셔서, 이 책을 읽을수록 연암과 술한잔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책을 읽어내려가다가, 과녁의 활처럼 꽂힌 부분이 있다. 고미숙 선생님이 열하일기안에서 뽑은 최고의 명문장도 아니고, 그의 놀라운 사유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자라면 한번쯤은 공감갈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벽을 사이에 두고 가끔 여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하도 가냘픈 목청과 아리따운 하소연이어서 마치 제비와 꾀꼬리가 우짖는 소리인 듯 싶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마 주인집 아가씨겠지. 반드시 절세의 가인이리라"하고, 일부러 담뱃불 댕기기를 핑계하여 부엌에 들어가 보니, 나이 쉰도 넘어 보이는 부인이 문쪽에 평상을 의지하고 앉았는데, 그 생김생김이 매우 사납고 누추하다.
나를 보고, "아저씨, 평안하셔요"한다. 나는, "주인께서도 많은 복을 받으셔요"하며 답하고는 짐짓 재를 파헤치는 체 하면서 그 부이을 곁눈질해 보았다. 머리쪽지에는 온통 꽃을 꽂고, 금비녀 옥귀고리에 분연지를 살짝 바르고, 몸에는 검은 빛 긴 통바지에 촘촘히 은단추를 끼었고, 발엔 풀,꽃,벌,나비를 수놓은 한 쌍의 신을 꿰었다.
-열하일기에 수록된 '도강록'의 한 부분-
캬~연암 박지원도 나와 같은 남자였다. 하하. 동료들은 투전판을 벌이는데 옆에서 술한잔 기울이고 있던 연암. 그런데 갑자기 한 여인의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려오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 소리를 따라 가 보았다. 그런데 왠걸! 실제로 보니 영 아니어서 실망하고 만 이야기다.
하하.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고야 말았다. 어쩜 이렇게 남자의 생활(?)을 과감없이 문장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거기다 해학과 재치가 넘친다. 그 여인에게 실망했는데도, 그 와중에 그 여인의 생김새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알면 알수록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다.
▲ 연암은 우리 삶 주변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으로 글을 썼다. 특히 열하에서 만난 특이한 동물들에 대한 기록이 인상깊다.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연암과 비슷한 충동이 드는 적이 있을 것이다. 114에 전화를 걸었더니 예쁜 여자 목소리를 듣고 생김새가 궁금하다던가, 어느 기관에 문의전화를 했는데 상담원의 목소리가 예쁘면 그 모습이 궁금해지는 경우에 말이다. 나의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저런 평범한 우리 네 이야기이면서도 유쾌한 에피소드라는 점.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암 박지원만이 가질 수 있는 큰 힘이 여기에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삶 이야기로 수백년이 지나도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연암 박지원에게 나의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며 술한잔 기울이면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연암의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느껴져서 술한잔 기울이고 싶어진다. 얼른 타임머신타고 날아가, 소주한잔 기울일 방법은 없을까?
창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책을 읽다가 열하일기같은 책을 써보고 싶은 담대한 꿈이 빗방울처럼 가슴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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