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닭날개인가 보다
후라이드 치킨 날개를 맛소금에 찍어 먹어 본다. 닭이 태어나서 그토록 누리고 싶어했던 짜고 쌉싸름한 자유. 그 자유의 맛을 느껴 보려고 말이다.
닭이란 동물을 맨 처음 알게 된 것은 5살 때이다. 부모님은 내가 다섯 살 때부터 양계장을 하셨다. 노란 병아리들을 한 막사에 가두어 놓고 사료를 먹이는 게 부모님의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하루는 닭을 닮아 있었다.
<필자의 부모님이 정읍역앞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때의 닭은 모이를 먹고 한번 하늘을 쳐다보고 다시 모이를 먹고 또 한번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 하늘마저 자기들이 갇혀있던 비닐하우스에 가려있었기에.
때로는 가끔씩 길을 잃은 어린 참새 한 마리가 출구를 찾아 막사안을 이리저리 날아 다니기도했다. 그때 수백 마리의 닭들은 그 참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쓰윽 자신의 날개에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 부모님은 전라북도 정읍시 터미널 사거리에 ‘투영통닭’이라는 가게를 차리셨다. 벌써 14년째 통닭가게를 운영해 오고 계신다. 질기고 질긴 닭과의 인연. 왜 부모님이 내가 대학입시에서 쓴 잔을 마시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셨는지도 이제 좀 알 듯하다. 이때 부모님의 마음도 닭가슴살처럼 퍽퍽했겠지.
문득 자식은 부모님에게 있어 닭날개가 아닌가 생각했다. 부모님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기 자식만은 이루고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없이 당신들을 날 수 있게 해줄 것 같았던 자식들 역시 대학입시, 취업전쟁 그리고 기타 돈문제와 같은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매번 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저 흰 깃털만 허공에 날릴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나도 부모님을 닮아 한 마리 닭이 되어 있을까? 대학교 중간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기차에 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께서 튀긴 통닭이 종이박스에 담겨 어느 집 초인종 벨을 누른다. 종이박스가 꼭 죽은 뒤에 들어가는 관처럼 느껴진다. 목, 날개, 다리가 잘린 닭 한 마리가 콜라 한 병, 나무젓가락 그리고 무라는 부장품과 함께 담겨있다. 닭의 삶이란 겨우 부모님 손에 만원짜리 한 장과 천원짜리 세 장으로 쥐어 진다.
정읍역에서 내려 한동안 걸었다. 터미널 사거리 오래된 모퉁이에 투영통닭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카니발이 앞에 바쳐져 있고, 어머니의 짧은 머리가 가게 창 너머로 어렴풋이 보인다. 하루 종일 닭처럼 두발로 서계시는 나의 어머니가. 또 하루 종일 배달하느라 힘겨워 보이는 자동차 한 대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신다. 아들 한번 안아보자며 내 손을 잡아 끈다.
무한경쟁으로 차갑기만 한 세상. 뜨겁고 한없이 따뜻한 것이 어머니품속에 있었다. 포옹하는 순간 자식인 나는 어머니의 닭날개가 되었다.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닭날개라도 달아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머니께 갑작스레 물었다.
“오마니! 오마니는 왜 항상 머리를 짧게 잘라요?”
“응, 네 아빠하고 연애할 때 이 머리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
그러고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처음으로 들켜버린 듯 멋쩍게 웃으신다.
“그런데 아버지가 가장 미울 때와 사랑스러울 때는 언제에요?”
“별걸 다 묻는다. 내가 가게일 하면서 힘들어 해도 힘든 걸 잘 몰라줄 때 제일 밉지. 그러면서도 가끔씩 피로회복제 같은 것을 사 올 때가 있거든. 그때는 어찌 또 사랑스러운지...”
내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참 별걸 다 물어봤다.
“오마니 자식들은 언제 가장 보고 싶은데요?”
“아침에 눈을 뜨서 저녁에 눈 감을때까지”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통닭주문이 들어온 모양이다. 어머니는 서둘러 닭 한마리를 튀김기계에 넣는다. 기름에 튀겨지고 있는 닭을 향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닭들아! 너희들은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날개 돋힌 듯 팔리기라도 해라. 그러면 잠시나마 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튀김기계 앞에 서 있는 어머니와 그 옆에서 종이 박스를 펼치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 보았다. 가게 창문너머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꼭 하얀 깃털을 가진 닭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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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샘터 대학생 명예기자 게시판에 제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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