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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조선 범과 만나다

by 이야기캐는광부 201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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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저자
오주석 지음
출판사
| 2006-02-0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친절하고 깊이 있는 우리 미술 안내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창밖엔 눈이 가득 쌓였다. 내 마음에는 근심도 함께 쌓였다. 눈이든 근심이든 녹아 없어질려나. 이럴 땐 책이나 읽어야지. 오주석의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을 펼처 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자 미상의 <이채초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옛 선조들이 이런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는 사실에 언제나 놀라고 만다. 


특히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호랑이의 모습을 친근한 옆집 고양이 같으면서도 호랑이의 위엄을 잃지 않게 실감나게 묘사한 점이 눈길을 끈다. 털에 대한 묘사부터 검은 줄무늬까지 실제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그림 전반에 흐른다. 으르렁 대고 있는 모습같기도 하고, 사냥꾼과 호랑이가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어떻게 호랑이를 눈 앞에 두고 그린 것처럼 세세하게 그렸을까?

책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와 친했던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를 그리더라도 아주 사납고 무섭게 그리기보다는 얼굴을 보면 왠지 쓰다듬고 싶게 그렸나 보다. 김홍도도 호랑이의 죽은 모습을 여러 번 본적이 있거나 한번쯤은 생포한 호랑이를 구경했을지도 모른다. 조선왕조실록 인조 4년의 기록을 보면, "인왕산 성 밖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그 호랑이가 인경궁 후원까지 넘어 들어왔으므로 군졸들을 거느리고 발자국을 되밟아 잡았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단다.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군졸들은 얼마나 오금이 저렸을까. 생각만해도 다리가 후들후들하다.


‘창덕궁 후원에 범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표범을 잡고 돌아왔다.’(1465년 9월 14일, 세조 11년)


‘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1603년 2월 13일, 선조 36년)


‘창덕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1607년 7월 18일, 선조 40년)


- 우리나라 조선 범들에 대한 기록들 -


우리나라의 호랑이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야생호랑이들을 박멸하기위해 우리나라의 수많은 호랑이들을 죽였던 것이다. 일본놈들의 악랄한 박멸작전에 애꿎은 야생 호랑이들의 목숨만 날라갔다.  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로는 한반도 내에 야생 호랑이는 한 마리도 없고, 남한에서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일본 포수에게 포획된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1946년 평북 초산에서 잡힌 것이 최후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야생호랑이들이 많이 남았다면 으슥한 산길을 홀로 다니기가 무서웠겠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특유의 야생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일제 씨부랄놈들...




▲  1922년 10월 2일 경주 대덕산에서 농부를 덮친 호랑이가 잡힌 모습이다.

남한 마지막 호랑이의 사진이다.

사진출처 : [월간 산]의 기사  남한에 야생 호랑이 있나, 없나[링크]



이제는 그저 옛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만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저자는 김홍도의 위 그림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문득 무언가를 의식한 듯 갑자기 정면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순간 정지한 자세에서 긴장으로 휘어져 올라간 허리의 정점은 정확히 화폭의 중앙을 눌렀다. 가마솥 같은 머리를 위압적으로 내리깔고 앞발은 천근 같은 무게로 엇걸었는데 허리와 뒷다리 쪽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금방이라도 보는 이 머리 위로 펄쩍 뛰어 달려들 것 같다. 그러나 당당하고 의젓한 몸집에서 우러나는 위엄과 침착성이 굵고 긴 꼬리로 여유롭게 이어지면서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굽이친다.


- 26쪽 -


이 책의 매력은 이처럼 그림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있다.  실제 그림 앞에 서서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범위의 감상평이다. 


또 하나 책에 소개된 김홍도의 <죽하맹호도>를 빼놓을 수 없다.


▲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호랑이의 표정이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하는 뜨거운 표정이다. 꼬리는 굳세게 치켜 들었다. 책에 따르면 일찍이 호랑이 박사 손도심 선생(1920~1979)은 조선범의 멋은 천하를 휘드를 듯 기개 넘치는 멋들어진 꼬리에 있었다고 말했단다.


오주석씨의 그림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선 범을 실제로 보고싶은 충동이 마구 들었다. 김홍도가 서민들이 등장하는 그림만 그린 게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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