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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리뷰

소설가 황석영 힐링 토크, 작가의 삶이 여울물처럼 흘러 들다



거침없는 입담, 황석영의 힐링토크


"1년 반 동안 글을 열라게 썼어요. 요즘 아이들 말로 졸라 썼지. 하루 10시간. 12시간씩. 독자들이 나를 살렸어요. 나를 사랑해주고 해서 이젠 노후준비까지 다 끝났습니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던진 황석영 작가의 거침없는 입담에 좌중이 '하하하' 배꼽을 잡았다. 이곳은 18일 오후 4시 한남대 56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황석영 작가와 함께하는 위로와 공감의 힐링 토크 및 사인회'현장이다. 

이번 힐링 사인회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이후 우울에 빠지거나 멘붕이 온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청중의 연령 때는 대학생부터 주부,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그의 인생이야기가 특유의 유머화술로 청중들의 가슴에 전해졌다.


그는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감옥살이를 끝낸 후 다시 소설을 써야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당시 모 신문사가 아파트를 빌려주어서 그곳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소설을 쓰며 지냈고 결국엔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이를 '열라게 썼지'라는 신세대 용어로 재밌게 표현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힘겨운 시절도 웃으며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선착순 200명이 받아갈 소설<여울물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소설<장길산>을 연재하던 시절의 에피소드



고등학교 때 황석영 작가님의 대하소설 <장길산>을 재밌게 읽었기에 황 작가님은 꼭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다. 이 날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카메라를 들고 부랴부랴 찾아갔다. 마침 작가님은 장길산 연재 당시의 에피소드도 들려주셨다.


"내가 장길산을 12년 동안 쓰면서 한참 민주화, 반 유신 운동한다고 도시마다 돌아다닐 때였어요. 당시 길거리에서도 쓰고 다방에서도 쓰고 그랬어요. 그리고는 터미널이나 역에 가서 제 원고를 이름 없는 사람한테 전해주고, '이거 장길산 원고인데 한국일보에 전해 주세요.'고 부탁하면 모르는 사람들도 전해 주고 그랬어요.

한 번 펑크 난 적이 있어요. 어느 날 휴가병한테 제 원고를 전해 달라 줬는데, 그걸 가져다주면 부대에 늦게 복귀하게 생겼으니 원고를 가지고 국방부로 들어가 버렸어요. 모 기자가 내무반에 자고 있는 그 상병을 찾아갔는데 이미 그때는 늦었지. 한 회분 연재가 펑크 난 거야."


황석영 작가의 일화는 대단했다.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다웠다. 작가는 그런 사랑을 독자들로부터 받고 살아왔기에 이번 힐링 토크 강연을 통해 200권의 신작소설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출판사 사장님의 마음은 아팠을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이날 강연에 참가한 사람들 중 선착순 200명은 무료로 그의 신작소설<여울물 소리>를 선물 받았다. 게다가 작가가 친필사인을 현장에서 해주셨으니 그야말로 계 탄 날이었다.



▲ 참가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황석영, 그가 생각하는 '이야기'란?



이날 복도훈 문학평론가가가 사회자로 나서, 어떤 계기로 이야기꾼이 등장하는 이번 소설을 썼는지 작가에게 질문했다. 황 작가의 답변 속에 내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새 스토리텔링,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이야기라는 것이 이야기꾼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냐? 아니에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 앉아있는 분들도 다 이야깃거리에요.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꿈꾸죠? 현실과 삶에서 겪은 것들을 재구성하고 자기 안에 간직되었던 것들이 나타나는 거죠. 상징적인 물건이나 장면으로 바뀌어 보여 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삶 자체가 서사인거죠.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인 것이죠."


가슴에 팍 꽂혔다고나 할까.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더불어 작가로서의 솔직한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나는 소설의 달인일까? 아닐까?


"제가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볼 때마다 감동 받아요. 밥상을 30개를 머리에 이고 나르는 사람, 화물 상자를 아래서 위로 던져서 쌓는 사람이라든가.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단순노동을 10년, 15년 정도 하면 동작도 아름다워지고 삶의 철학이 생기면서 겸허해지고 당당해집니다. 집에 따라 가면 아이들이 다 반듯하게 자라고 있고요. 부인이 나와서 찌개도 끓여주는 모습이 나오죠. 그러면 가장의 모습들에 감명 받아요. 또 아이들한테 철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말이 근사하고 빛이 납니다. 단순노동을 해서도 일정기간 열심히 삶을 바쳐서 하면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거죠."


그러면서 자신은 소설을 50년이나 써왔어도 소설의 달인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작가라면 누구나 겪는 창작의 고통도 들려주셨다.


"'나도 소설을 한 50년 썼는데 달인을 넘어서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봤는데 아닌 것 같아요.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연재 1회분이 A4 1장 반 분량이에요. 저녁 7시부터 두드렸다가 날렸다가 새벽 동이 틀 때 겨우 써요. 10시간, 12시간 앉아서 쓰는데 겨우 그 정도를 쓰는 거죠. 소설이라는 것이 50년을 써도 안 되는 걸 보니 100년을 쓰면 달인이 되려나요?"


그런 작가로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소설을 통해 작가론을 써보면 어떨까 해서 펴낸 것이 자전적 신작소설<여울물 소리>이다. 작가라는 게 무엇이고 전통시대의 이야기꾼이 무엇인지 담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 황석영 작가님이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고 계신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라는 청춘의 질문이 있었다. 작가의 답변이 너무 명쾌해서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없습니다. 살다보니깐 이렇게 되었는데.


이게 운명 비슷한 건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한국 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살던 데를 가보니깐 인천상륙작전이 휩쓸고 지나가고, 의 반절이 싹 날아갔더라고요. 다행히 방 한 칸은 살아 있었지만, 어머니와 누나들이 망연자실 해서 울었어요. 아버지는 열심히 치우시고, 저도 사내자식이라고 울기보다는 책이나 교과서를 찾아내었어요.


그러던 시기에 중학교에서 작문을 쓰라고 했어요. 피난 후 집으로 돌아왔던 날의 이야기를 글로 썼더니 그 작문이 교내 대표로 선발되고 전국대회까지 출품되었어요. 그러다 최우수상을 타고 신문에 까지 난 거죠. 이후에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작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



▲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황석영 작가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오면서..


그의 진솔한 삶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와 더욱 가까워 진 것 같았다.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욱 더. 이번 힐링 토크는 독자와 작가가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시간이자, 그의 작품세계를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강연이 1시간만 진행된 것이 아쉬웠지만, 사람들은 책도 선물 받고 사인을 받을 수 있어서 아쉬움을 덜지 않았을까.


아직 <여울물 소리>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내 관심분야인 '이야기, 스토리텔링'에 대한 지혜를 터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작가 황석영


황석영(黃晳暎, 1943년 1월 4일[1]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62년,《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하며 등단하였고 1970년,《탑(塔)》이 조선일보에 당선되며 문단에서 활동하였다.[2]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가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그는 민중 역사소설로 불리는 《장길산》을 통해 민중의 건강한 생명력에 주목했으며, 《한씨연대기》와 《삼포 가는 길》등을 통해 산업화 시대의 시대정신과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대변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길산》,《삼포 가는 길》,《손님》,《오래된 정원》,《심청》등이 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