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공주에 다녀왔다가 부랴부랴 라푸마둔산점으로 향했다. 이곳 2층 북까페에서 소설가 한창훈과 함께하는 여행콘서트와 더불어 홍미나 원장님의 가야금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카메라가방을 달랑달랑 메고, 둔산점 매장 2층으로 들어섰다.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있는 찰나, 한창훈 소설가를 발견! 키카 크시고, 날카로운 눈매에 카리스마가 넘치시는 얼굴이었다. 그와 반대로(?) 단아한 미소가 아름다우신 홍미나 원장님이 한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이렇게 외모가 다른(?) 두 분이 오늘 여행콘서트를 이끌어주신다니 무척이나 설레었다. 얼른 그 현장속으로 들어가보자.
▲ 라푸마 둔산점 주인장이신 이상은님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겨울날, 따뜻한 가야금 선율속으로
라푸마둔산점의 주인장이자 산악인이신 이상은님의 유쾌 발랄한 진행으로 여행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먼저 아리따우신 홍미나 원장님(조은퓨전앙상블)의 가야금공연이 펼쳐졌다. 연주곡은 '아른 봄에 내리는 눈'이라는 예쁜 뜻을 지닌 <춘설>과 정읍사를 배경으로한 <달아 높이 곰>이었다. 가야금은 오동나무 공명반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들고 12줄로 이루어진 악기다. 줄을 튕기는 홍원장님의 손가락이 우아하게 움직였다가, 날렵했다, 다시 느려지기를 반복했다.
▲ 홍미나 원장님의 가야금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춘설>의 선율이 사람들의 마음에 봄눈이 휘날리는듯 내려앉기 시작했고, <달아 높이 곰>에 이르러서는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리기도했다. 홍미나 원장님이 가야금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때는 어렸을 때였다. 엄마손 잡고 거리를 걷고 있는데, 쇼원도 너머로 한복을 차려입고 가야금을 품에 안은 한 인형 모습에 마음이 쏠렸다고 한다. 이후에 늘 마음속에 가야금이 따라다녔고, 커서는 황신덕 선생님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우셨다. 이날 전통악기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소설가 한창훈, 화물선 얻어타고 바닷길 여행에 오르다
"2005년 화물선을 타고 인도양을 건너갔습니다. 이런 것 안해보셨죠?"
바다의 작가이자 섬의 작가로 불리는 한창훈 소설가의 첫마디였다. 나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2005년, 구눈 현대상선의 2200TEU급 컨테이너선을 얻어 타고 부산에서 시작해 저 멀리 아라비아반도의 두바이까지 여행을 떠났다. 여행길에 자동차를 얻어탄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큰 화물선을 얻어탄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이 작가님 보통 내공이 아니셨다.
▲ 한창훈 작가님이 여행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있다.
작가님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화물선에는 총 28명의 인원이 탔는데, 항상 4명이 빈 24명이 탄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기획서를 만들어 2년에 걸쳐 현대상선 홍보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의 노력이 눈물겨웠는지, 문학청년이 꿈이었던 홍보실 상무님의 허락으로 화물선을 얻어타고 머나먼 바닷길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엔 혼자 타게 되어 있었는데, 4명의 자리가 빈 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터라 3명을 더 태워주면 안되냐고 또 설득했다. 그래서 박남준 시인, 유용주 시인, 안상악 시인이 화물선을 타고 바다를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의 티켓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가 바닷길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은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배를 타고 경력이 쌓이면 사람들의 로망이 큰 화물선을 타는 겁니다. 이 경력이 3년정도 있으면, 선원수첩(선원의 신분을 증명하는 수첩)을 신청할 수 있어요. 그걸 받아야 화물선 탈 수 있어요. 월급도 달러로 받고 1년에 한 두번씩 집에 옵니다. 이 사람들이 한 번씩 오면 어마어마한 뉴스를 가져옵니다. 섬 아이들이 볼 때도 육지가 더 멀지만, 이 사람들은 더 멀리 다녀오거든요. 오래만에 돌아오면 싱가포르, 부에노아이레스가 어떻고, 영국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대화 자체가 달라요. 옆집 다녀온듯이 이야기해요. 사람 환장해요. 이런 걸 들으니. 늘 궁금했었어요. 육지보다 바다가. 이게 늘 마음속에 있었는데.."
또 우리나라 작가들이 바다이야기를 잘 안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작가들이 더 넓은 바다를 경험하고 생각의 지평을 열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도 작가님의 여행이야기를 들으니 바닷길 여행을하고 싶어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싶은욕망이 꿈틀댔다. 이어 그 욕망에 더욱 불을 지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물 한방울이어라, 캬!
"대만, 중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들렸어요. 말라카 해협을 빠져나가면서 해적당직도 섰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배를 털러 많이 다녔어요. 그 친구들 목숨걸고 오는거에요. 작은 배를 타고 오는데 도망가다가 큰 배에 닿으면 가라앉아버려요.
8일이 걸려 그곳을 지나고 인도양 중간쯤에 이르렀어요.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가 똑같더라구요. 그 하늘과 바다 사이를 우리 배 한 척만 가고 있었어요."
눈앞에 그 광경이 펼쳐졌고, 어느새 여행콘서트를 찾은 사람들도 함께 화물선에 올라타 있었다.
"어느 날 함께 간 안상학 시인이 브릿지에서 혼잣말을 하더라구요. 오랜 시간 여행하다보니깐..뭐..허허(웃음).
'하..진짜 물 많대이, 누가 이걸 지구라켔노. 이게 수구지. 물덩어리지. 땅덩어리가 아니다.'이렇게 말하더라구요."
▲ 이번엔 벌떡 일어나셔서 여행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정말 인도양에 떠 있다보면 지구가 수구처럼 보일만도 했다. 시인다운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이어지는 말이 더욱 걸작이었다.
"그러다 또 안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별이 뭔가 했더니, 우주에 떠 있는 물 한방울이구나.'
쥑이죠? "
'캬, 쥑인다 '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캬~! 소주를 안마셨는데도 그냥 캬~!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별이 우주에 떠 있는 물 한방울이었구나.
"시인이 이런 것때문에 용서를 받는거에요.(청중 웃음) 우리 지구가 물이에요. 허공에 떠 있는 파란 물 한 방울이에요.엄청난 인식이에요. 명색이 바다의 작가인 저는 한 번도 생각 못한 것인데..허허.
제기랄 이 친구만 데리고 올걸 시인을 3명씩이나 데리고 왔어요.(청중 웃음)"
크크크. 작가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주 허공에 떠있는 푸른 물 한방울에 깃들어 살고 있는건데. 과연 이 물방울이 허공에 왜 있을까.
눈물 한 방울. 신이 흘린 눈물방울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어요. 지구는 혼자 돌고, 태양계를 공전하죠.
그렇게 치면 달은 지구를 공전하고. 지구와 달은 태양을 공전하고요. 어디 책에서 보니 우리 태양계가 게자리 성운을 향해서 통째로 가고 있대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생각해보면, 지구가 떨어지고 있는 눈물방울일 수 있잖아요. 우리가 왔던 데서 떨어질 수 있겠구나. 거기가 위고, 가는데가 아래고."
물이 많은 우리 지구가 눈물방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또 '캬~!쥑인다'를 연발했다. 이날 '내가 살고 있는 별이 뭔가 했더니, 우주에 떠 있는 물 한방울이구나.'라는 안시인의 말과 '우주에 떠 있는 눈물 한방울'이라는 한창훈 작가님의 말이 가슴속에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지구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던 게 이번 여행콘서트에서 얻은 큰 수확이었다. 더불어 작가분들이 이 세상에 왜 필요한지를 깊이 느꼈다.
▲ 박수, 박수! 짝짝짝!
이어진 맛난 족발과 맥주파티, 자취생인 나는 복받았다
이어 작가님은 몽골여행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셨다. 강연이 마무리되고, 홍원장님과 한작가님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맛있는 맥주파티가 열렸다. 족발, 귤, 과자, 통닭 등 자취생인 내가 매일 천장에 그리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술을 먹다가 한창훈 작가님이 우연히 내 앞에 앉으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순간 쫄았다. 크크크. 그래도 용기내어 살짝 여쭈어 보았다.
나 : "작가님도 글을 쓸 때 메모를 많이 하세요?"
한창훈 소설가 : "그야 기본이지~! 저는 늘 메모해요. 적어놓고는 어디다 적어놨는지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하하."
이어 양념통닭을 맛있게 뜯었다. 다음엔 어떤 여행콘서트가 열릴까? 무척 기대되기도 했다.
▲ 나도 사인 한 장 받았다.
한창훈 소설가는?
한창훈은 농어촌과 소도시 하층민들의 밑바닥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다. 탄탄한 작품 구성력과 섬세한 문체, 전라도와 충청도의 질박한 사투리 구사도 한창훈 문학의 주요한 장점들이다.
그러나 한창훈은 제대로 문학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글짓기 대회에서 상 한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가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나이 스물 여섯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한창훈은 5·18을 고교시절 광주에서 겪었다. 그때 함께 어깨를 겯고 있던 같은 또래의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에 진학했으나 세 학기 만에 그만뒀다.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생활 속에서 몸을 굴리며 치열하게 살아 보기로 했다. 이 때부터 오징어잡이배나 양식 채취선을 타는 뱃사람이 되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의 외상 술값 때문에 얼마 못 가기는 했지만 포장마차 사장도 해 봤다. 공사판 잡부와 시골다방 DJ, 홍합공장 노동자, 여대 앞에서 브로치 팔기 등도 이 시절 그가 거친 직업들이다.
이렇게 한동안 바람처럼 떠돌던 그는, 문득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소설로 풀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소설을 쓰려니 막막했던지라. 그간 벌어놨던 돈으로 복학을 했다. 그리고는 전공은 하나도 안 듣고 대신 다른 과의 `문학`자가 들어간 과목은 모두 다 골라 들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욕심에 문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맨날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그 이론에 맞게 습작하는 데 열중하다, 흥미를 잃고 `쓰고 싶은 대로 쓰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문학은 가장 비문학적인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단 한가지 생각. 바다에 대한 생각만을 간직하고 글을 써나가기로 했다. 한창훈은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에서 평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산은 높낮이가 너무 뚜렷해서 싫다. 또 산은 끝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발 아래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내려온다. 그러나 바다는 파도가 치면 똑같이 치고, 잔잔해지면 똑같이 잔잔해진다. 한창훈은 바다의 이 `어마어마한 공평함`을 좋아한다.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부인 최은숙도 문인이다. 지금은 중학교 국어교사로 있지만,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1996년에『집 비운 사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작가소개 출처 : 알라딘 (네이버 책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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