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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리뷰/팔도여행

[원도심 추억의 맛 탐방] 영강식당 소주잔에 개나리꽃 피었더라

by 이야기캐는광부 201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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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까페 '대전의 맛집멋집'[링크] '원도심 추억의 맛 탐방'모임에 참석한 후 쓴 후기입니다. 콩나물국물 위로 소박한 음식이야기가 흐르는 좋은 모임에 초대해주신 '서비'님께 감사드립니다잉.^^ 



▲ 소주잔에 개나리꽃 이름표가 붙어 있다. 서비님의 굿 아이디어!


지난 4월 26일 영강식당 소주잔에 샛노란 개나리꽃이 피었다.  서비님의 아이디어로 소주잔에 노란색 스티커 이름표가 달렸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소주잔에 개나리꽃이 무더기로 핀 것 같은 풍경. 


개나리꽃 핀 소주잔과 콩나물탕, 기쁘지 아니 한가


맛집멋집까페 회원들이 차례차례 도착하면서 회비를 냄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소주잔을 가져갔다. 특별한 소주잔 덕택에 이름이 헷갈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날 잘 차려진 맛있는 음식 사이사이로 설렘 가득한 눈빛이 오고갔다.



▲ 초록빛 소주병과 노오란 소주잔. 잘 어울리는 봄날의 연인같다.


이날 '원도심 탐방 제3탄'의 주제는 '콩나물탕'. 콩나물을 많이 먹으면 키가 자란다는 속설이 먼저 떠올랐다. 고3때 나의 짧아서 슬픈 두 다리를 보고 그 속설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엔 키가 큰다는 희망으로, 어른이 돼서는 시원한 해장국으로 콩나물과 인연을 맺고 있는 우리.


사장님이 청양고추, 바지락, 황태 등이 어우러진 푸짐한 콩나물탕을 내놓으셨다. 묵직한 그릇에 담긴 콩나물탕 위로 소주잔의 그림자가 휙휙 왔다 갔다, '찡~'하고 부딪혔다. 이어 콩나물탕 한 숟갈 들이키면 목구멍에 사무치는 개운함이 찡~했다. 



▲ 영강식당표 콩나물탕. 청양고추와 콩나물 그리고 바지락, 황태의 자태가 군침을 돌게 한다.


영강식당표 콩나물탕 역사는 40년! 공자의 불혹(不惑)을 지나


영강식당 콩나물탕의 역사는 40년이 넘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시기를 넘어 손님들에게 흔들림 없는 맛과 정성을 전해주고 있는 영각식당표 콩나물탕! 



▲ 연숙희 사장님.


이곳 사장인 연숙희(64세)씨는 아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 앞으로 사업자내고 운영한지 10년이 넘었죠. 제가 주방에서 일하다가 원래 사장님에게서 인수받았어요." 1남 1녀를 키운 연 씨는 요새 아들이 잠깐 주방을 도와주는 거 빼고는 주로 혼자 일한단다. 오래 일 하다 보니 한 번에 20명이 넘는 손님을 받는 것도 아무 문제없다. 주방에서 20여명이 넘는 까페 회원들의 콩나물밥을 장만하는 사장님의 손놀림은 정말 우사인볼트급이었다. 



▲ 국자로 떴떠니 푸짐하게 딸려 나온다. 월척이오. 월척!


영강식당 콩나물탕만의 비법을 살짝 공개해달라는 부탁에 사장님은 호호호 웃으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시다가 "콩나물탕에 들어가는 콩나물이 특별하죠. 제가 2~3일 동안 기른 콩나물을 넣거든요. 손님들이 이런 콩나물 못 먹어 봤다며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어 "굴전과 수육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손님들이 대전에서 이런 수육 못 먹어봤다며 칭찬해주세요."라며 말하며 뿌듯한 듯 미소를 머금으셨다.



▲ 솥단지에 담긴 콩나물. 콩나물밥의 재료가 된다.


콩나물은 연숙희씨 만의 음식철학을 키워주고


8남매중 다섯째라는 사장님은 마흔 넘어서부터 음식 만드는 일을 해오셨다고 한다. 먼저 아구찜과 해물탕을 주메뉴로 장사를 하시다가, IMF가 찾아온 뒤 장사가 잘 안 돼 청국장 백반 장사로 바꾸고는 지금의 영각식당과 인연을 맺었다.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고부터는 손님들이 끊기긴 했지만, 식당 자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꾸준히 찾아와주는 손님들이 있어 먹고 살 정도는 된단다. 


사장님은 "콩나물탕에 들어가는 고추는 작은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은 걸 가져다 써요. 내가 고추씨도 빼고 대가리도 다 따요. 또 우리 식당 반찬 재료들은 끓는 물로 씻어서 만들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그런 청결함에 엄지손가락을 들어준다니까요."라며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이곳의 별미는 콩나물밥. 비벼 먹으면 일품!


사장님의 음식철학은 진심과 청결함이 담긴 음식을 내놓자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여기에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 씨를 비롯해 유명연예인들도 많이 찾았다고 하셨다. 사장님이 장사를 해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제가 원조 사장님으로부터 이 식당을 인수받아 막 꾸려가기 시작했을 때에요.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하면서 점점 손님들이 제 맛이 나온다고 칭찬받았을 때가 기억에 남네요."


사장님의 행복은 어디에서 샘솟을까. "손님들이 주방을 향해 '아이구, 잘먹고 갑니다'라고 말할 때 제일 고맙고 행복해요, 손님들에게 음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사장님은 지금 영강식당의 후계자를 찾고 있다. 음식솜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진실한 사람을 찾고 있단다. 후계자를 못 찾을 때는 힘이 닿는데 까지 자신이 계속 운영해 나갈 생각이란다.



▲ '대전의 맛집멋집'네이버 까페 회원들. 이날 참 많이 오셨다.


맛집멋집까페 회원들의 진달래꽃이 취해 있고 


도란도란 음식 이야기가 꽃피던 이 날. 이번엔 까페 회원들의 얼굴에 붉은 진달래꽃이 피었다. 사람들의 볼에 붉은 취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콩나물밥을 내오시며 이것도 마저 먹고 가라고 하셨다. 후한 인심이 마음까지 넉넉했다. 식당을 나와 2차에서 술한잔을 걸친 회원들은 진달래꽃을 양 볼에 한 가득 피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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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콩나물국의 역사는 1500년전부터?


한편 콩나물에 관한 기록은 6세기 중국 남조시대때 도홍경이 쓴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라는 책에 처음 나온다. 이 책에는 황권(黃券)이라는 약재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콩에서 나온 새싹을 말린 것이다. 콩나물은 위장의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어 술 마시고 난 뒤 먹으면 열을 내려줘 속을 풀어준다. 콩나물국이 해장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고려시대 고종 23년(1236년)에 발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도 콩나물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콩나물을 약재로도 쓰면서 해장국으로도 끓여 먹지 않았을까. 또 콩나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콩나물이 많이 생산되었다는 전주다. 전주의 역사를 기록한 전주시사(全州市史)에는 조선시대 전주 사람들은 하루 세끼 식사에 모두 콩나물을 반찬으로 올렸다고 전하고 있다. 콩나물에 관한 역사이야기는 여기까지!


못다한 이야기


▲ 이날 먹은 수육의 맛도 부들부들 쫀득쫀득!


▲ 소주잔에 개나리꽃밭을 만들고 있는 서비님의 손길.


▲ 상추에 수육 한 점 그리고 소주 한 잔.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 바쁜 주인아주머니를 도와 콩나물탕을 날라주시는 선희님. 


▲ 콩나물탕 항공촬영!^^


▲ 하얀 그릇에 담으니 아주 아주 먹음직스럽다.


▲ 영강식당의 비기? 굴전!!!


▲ 사람 참 많죠? ㅋㅋ


▲ 자~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콩나물 밥 한 점~! 아~~~


▲ 메뉴판


▲ 영강식당은 이렇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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