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네이버까페인 '대전의 맛집멋집'[링크]의 '원도심 추억의 맛 탐방'모임에 참석한 후 쓴 후기입니다. 소박한 음식이야기가 흐르는 좋은 모임에 초대해주신 '서비'님께 감사드립니다잉.^^
상단 이미지 by 서비
시골 외갓집에서 놀러 가면 외삼촌들하고 화롯불에 조개를 구워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외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지곤 하셨다. 몇 분후에 돌아 오셔서는 김치찌개를 무심하게 화롯불에 올려놓으셨다. 그러면 이모부는 '장모님~캬~'하며 엄지손가락을 드셨다. 자글자글, 보글보글 소리에 맞춰 가족들의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참 맛있게 들렸던 순간들. 김치찌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외할머니의 소박한 손맛이 그리워진다.
학선식당 젓가락 통에 새겨진 글귀는?
지난 29일 '대전의 맛집멋집'까페 회원들이 선화동 학선식당을 찾았다. 김치찌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 돼지두루치기와 파전을 다 먹을 때쯤 학선식당의 인기메뉴 김치찌개가 등장했다.
젓가락 통을 열다가 '3대·30년 시 인증 전통업소'라는 쓰인 문구와 마주쳤다. 이곳 사장님인 고성곤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선식당은 3대째 내려오는 곳은 아니고,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했기에 시 인증 전통업소가 되었단다.
▲ 젓가락 통에 시 인증 전통업소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장님은 1976년부터 학선식당을 운영하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맛깔스런 음식을 내놓았다. 30대 초반부터 시작하셨으니 개업 당시엔 손님들로부터 총각 사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오랜 세월 아내와 함께 식당을 꾸려오며 1남 2녀를 키워냈다. 사장님은 "막내가 벌써 33살이고, 큰 애는 39살이에요."라고 말씀 하셨다. 식당 한쪽에는 손녀딸의 사진이 걸려 있다. 훤한 이마에 지난 세월과 추억들이 스쳤던 것일까. 시선을 잠시 멀리 두었다가 물끄러미 김치찌개를 바라보셨다.
▲ 이 날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 풍경. 다시 떠올려도 군침 돈다. 파전, 콩나물 무침, 제육볶음, 묵..
▲ 새하얀 쌀밥에 고기 한 점 올려 놓았다. 몇 초 안되어서 내 입속으로 들어갔다.
▲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씹어먹는 쾌락은 아주 일품이다.
▲ 돼지두루치기도 함께 시켜먹었는데 색깔이 내 입맛을 유혹한다.
6학년 7반(?) 사장님이 들려주는 30년전 학선식당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라도 억양이 섞인듯하여 고향을 여쭈었다. 역시나 고향이 전북 부안이라고 하셨다. 연세를 여쭈니 "6학년 7반이에요."라고 재치 있게 대답하셨다. 처음엔 무슨 말씀인가 했지만 67세를 그렇게 표현하신 거란 걸 깨달았다.
우리들은 사장님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옛날 학선식당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구수한 억양을 그대로 살려 여기 옮기겠다.
▲ 학선식당 고성곤 사장
- 사장님이 식당을 시작할 당시엔 주변이 많이 발전 안 되었죠?
70년대엔 여기 뒤에 내천이 흘러가고 그랬어요. 풀 깎으러 다니고 그랬어요. 유성이 젤로 먼디요. 택시들이 유성 넘어가질 안했어. 유성까지는 온천 땜에 택시가 갔어요. 그런데 택시들이 유성 넘어 동학사 같은 데 갈려면 하늘의 별 따기였죠. 그랬어요.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 메뉴가 뭐였나요?
처음에 백반을 내놓았어요. 백반으로 승부를 걸었지. 200원짜리 백반으로. 30 몇 년 전이면 200원짜리 백반이 있었어요. 그때 공무원 월급이 2만원밖에 안 갔으니깐. 백반이 지금 5천원이죠. 오천 원이면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나타나죠.
백반 하다보니까 다른 거 찾는 사람 있더라고요. 친구 집 초대해서 갔는데 해물 여러 가지 넣어가지고 끓여 왔더라고. 먹어보니 국물이 시원하고 괜찮아. 영감을 얻어서 해물 탕을 끓였어요. 멸치육수를 우려내서 끓여 놓고 생태, 동태, 오징어, 꽃게, 소라, 대합 같은 거를 넣었어. 그러니 손님들 반응이 오는 거여. 줄이 쫘악 섰어요. 그러다 옆에 삼천냥 뷔페가 생기는 바람에 식당이 잠시 죽긴 했지만.
▲ '대전의맛집멋집' 까페 회원들이 사장님으로부터 학선식당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던 중 시골에 내려갔더니 누가 김치찌개를 끓여왔단다. 비계 붙은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그 김치찌개가 그
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듣는 나도 군침이 살살 고였다. 그 이후로 김치찌개를 연구해보자는 결심이 섰고 지금까지 학선식당의 주요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단다.
- 김치찌개랑 반찬은 어떻게 만드시나요.
고기는 그날 매일 생고기를 가져다 써요. 썰어가지고 2시간동안 고아 놓아요. 고기하고 김치하고 맛이 어우러지게끔. 그래야 목구멍에 넘어갈 적에 칼칼한 맛, 따끔한 맛이 나오잖어. 이 맛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거죠. 낮에도 손님이 미어 터져서 못 먹고 가는 사람이 많아요. 음식도 반찬도 한 가지 한 가지 집에서 다 만들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김치찌개를 떠먹으니 그 맛이 더 깊었다. 우리들은 땡그랑 소주잔을 부딪쳤다.
▲ 칼칼한 김치찌개에 빠질 수 없는 소주 한 잔.
식당 하나로 아내랑 같이 용돈 벌며 살고 있어요.
이제 학선식당은 노후대책이나 다름없다. 작년에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만 두고, 지금은 아내와 단둘이 오순도순 식당을 꾸려나가고 있다. 자식들은 다 시집가고 장가가서 이젠 아내와 용돈벌이하며 식당 운영하는 재미로 사신단다.
사장님께 도청이 이전하면서 공동화현상 때문에 식당이 영향 받지 않았냐고 여쭈어 보았다.
"스스로 자신 없는 사람만 공동화 현상 일어나는 거 아니겄어요? 대전시가 150만인디 도청이전하고 나서는 천 명 정도가 빠져 나갔어요. 대전인구가 150만인디 그 정도 빠져나갔다고 흔들리겄어요? 내가 잘하면 손님들이 어디서든 찾아올 거라는 마음을 가져야죠."
오랜 세월 식당을 이끌어온 사장님의 자신감이 담긴 대답이었다. 물론 도청이전 후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식당 중 몇 집을 빼놓고는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학선식당 역시 낮에는 손님이 북적거려도 저녁에는 손님이 뜸하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 이대로도 족하다며 웃으셨다. "아내가 고생 많죠. 너무 고생해서 어쩔 때는 안 쓰러워 죽겄어."하고 걱정도 하시면서 말이다.
'학선식당'이란 이름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학선식당에 담긴 뜻도 물어보았다.
"뜻은 별로 없어요. 어저께도 누가 물어던데요. 그냥 학같이 선하게 살자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말하죠. 하하.
사실 '학 학(鶴)'자에 '신선 선(仙)'을 써요."
▲ 사장님이 깔깔이(?)를 입고 인증패 옆에서 포즈를 잡았다.
어느 덧 김치찌개도 바닥을 드러내고, 반찬 그릇의 음식도 하나 둘 사라졌다. 다 먹고 배를 쓰다듬으며 식당 곳곳에 걸린 액자들을 살펴보았다. 사장님이 문화해설사처럼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2005년도 기사가 담긴 액자를 가리키며 "이때 보다 지금이 더 젊으신데요?"하고 말씀드렸더니 멋쩍게 웃으셨다.
지금 이 글을 밤 10시에 쓰고 있다. 김치찌개 생각이 또 한 번 간절하다. 김치찌개는 자취 음식의 꽃이요. 자취생들의 반려자가 아닌가. 학선식당만큼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홀로 김치찌개를 끓여먹는 맛 또한 좋다. 나의 아버지는 이따가 통닭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어오셔서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계시지 않을까. 부모님이 대전에 오시면 학선식당에 모시고 가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학선식당은..
위치 : 대전 중구 선화동 348-4
전화번호 : 042-256-4057
특이사항 : 일요일마다 쉰다. 이 날은 사장님 부부가 쉬면서 건강관리 하는 날이다.^^
▲ 학선식당을 찾으면 만나게 되는 풍경
▲ 학선식당 간판 앞에서 까페회원들은 헤어졌다. 2차갈 인원들은 따로 떠났다. 하하.
김치찌개
궁중에서는 ‘김치조치’라고 하였다. 김치찌개는 김장김치를 생식으로만 먹기 싫을 때, 또는 먹다 남은 김치나 시어진 김치를 이용하는 방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특유의 채소가공식품의 하나인 김치는 소금과 술지게미ㆍ초ㆍ술 등에 채소를 절여 만들다가 조선 중기 이후 고추가 유입되면서 지금과 같은 김치가 되었으므로, 김치찌개는 고추를 이용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된다.
만드는 법은 겨울 통김치를 꼭 짜거나 물에 한번 헹구어 군내를 없애고 대강 썰어서 뚝배기에 담고, 쇠고기ㆍ편육ㆍ돼지고기 등을 썰어 양념하여 함께 담고 파ㆍ마늘을 넉넉히 썰어넣는다. 물을 적당히 부은 뒤 묽은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밥솥에 중탕해서 찌든지, 푹 무르도록 오래 끓여서 부드럽게 익었을 때 상에 올려놓는다.
김치찌개는 동치미무나 깍두기, 먹다 남은 김치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면 구수한 맛이 나고, 멸치 대신 돼지고기나 돼지갈비 등을 넣고 끓이면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는 영양식이 된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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