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네이버까페인 '대전의 맛집멋집'[링크]의 '원도심 추억의 맛 탐방'모임에 참석한 후 쓴 후기입니다. 소박한 음식이야기가 흐르는 좋은 모임에 초대해주신 '서비'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추억이 담긴 대전의 향토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상단 이미지 제공 : 서비 님>
대흥동 수원식당 가는 길, 흥에 겨운 내 신발
♬ 두루두루 빠바 두부두부 빠빠 치기치기 두루치기 치기 치기♬
두부 두루치기를 먹기위해 원도심에 있는 수원식당(중구 대흥동)에 가는 중. 내 나이키 신발이 박자를 탄다. 어느 때보다 흥겹다. 누가 자취생 아니랄까봐. 하하. 상기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수원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맛의 감옥. 맛의 올가미에 제대로 갇혀 볼 작정으로 말이다.
섭이 행님이 양반자세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옆 자리에선 중구청 직원분들이 술 한잔 기울이며 두부를 입 안으로 가져갔다. 곁눈질로 숟가락에 얹힌 두부를 바라 보았다. 군침이 꼴깍. "여기 두부두루치기 주세요~"하고행님이 주문하기 무섭게, 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상위에 올렸다. 이 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가락. 주거니 받거니 오고가는 '달그락. 달그락'소리. 두루치기를 먹을 때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두부두루치기, 두루 두루 혀에 감기는 매콤하고 찡한 맛
이 날 꼬치님, 밑빠진 독님, 구름곰님도 함께 하셨다. 주문한지 15분 정도 흘렀을까. 드디어 빨간 모자를 예쁘게 쓰신 할머니께서 우리 쪽으로 오셨다. 두부두루치기가 동그란 은빛 쟁반에 담겨 사뿐히 내려 앉았다. 호박, 양파, 파 등이 순백 두부와 한바탕 어우려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빨간 양념을 온 몸에 휘두룬 두부의 자태. 절로 침이 고였다. 젓가락이 상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지만, 보는 사람도 있고 해서 천천히 젓가락을 가져갔다. 이처럼 빨갛게 젖어있는 두부두루치기 앞에서 혓바닥이 두근두근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매콤한 맛을 즐겼다.
▲ 두부두루치기 대령이오! 김이 모락모락 빨간 양념이 아주 매혹적이다.
서비님이 '요즘 장사가 어떠세요'하고 여쭈니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도청이전하고 나서 손님들 발길이 많이 끊겼어. 단골손님들이 찾아주기는 하지만.."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순간 두부두루치기 맛이 매콤하면서 가슴 짠하기까지 했다. 각종 기관들이 신도심으로 옮겨가고, 충남도청까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원도심의 상권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사라진 원도심의 맛집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원도심의 추억도 함께 사라졌다며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 빨간 모자를 쓰신 분이 수원식당 주인장이신 할머니. 삶 이야기가 졸졸졸 흐른다.
할머니는 한동안 곁에 앉아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경기도 안성이 고향이시고, 결혼하고 나서 80년대 쯤 대전에 내려오셨단다. 예전엔 은행동 '안 산부인과' 건물에서 식당일을 하시고, 14년 전 대흥동으로 넘어와 한 자리에서 계속 식당을 운영했다. 두부두루치기를 팔며 삼남매를 키우며 대학까지 보내셨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결혼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자식까지 둔 중년이다.
할머니는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하시는 우리네 어머니들 모습 그대로였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에 눈이 갔다. 오랜 세월과 함께 원도심의 추억도 함께 주름져 있는 것 같았다. 두부 한 점이 울컥하게 입에서 부서졌다. 그때 20년 남짓 통닭가게를 해오신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났다보다.
▲ 두부두루치기와 소주 한 잔. 그 환상적인 궁합을 잊을 수 없다.
미니 인터뷰, 할머니의 손등엔 원도심의 추억이 주름져 있고
할머니는 하나 둘 원도심의 추억들을 꺼내 놓으셨다. 우리는 짧게 나마 인터뷰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칼국수 국물을 떠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두부를 숟가락으로 작게 쪼개 입에 넣었다.
▲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이폰에 담기고 있다.
우리 : 가게는 혼자서 운영하세요?
할머니 : 낮에는 우리 작은 며느리가 하고 밤에는 내가 해. 그러니깐 한결 낫더라고.
우리 : 삼남매도 두부 두루치기 많이 먹으며 자랐을 것 같아요.
할머니 : 그렇지. 해주면 먹었지.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오면 오리 훈제, 닭도리탕, 닭백숙, 갈비살, 돼지고기 목삼겹 도 만들어 줘. 그걸 해주면 우리 며느리들이 싸가지고 가서 먹기도 해. 식당하며 자식들 다 키웠지. 일본에 갔던 아들, 독일유학 갔던 딸 생활비. 다 이 장사하며 번 돈으로 보탰어.
우리 : 할머니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나는 면보다는 밥이 좋아. 옛날에 시골에 살 때 면을 하두 많이 먹어서. 밀 농사진 거가지고 칼국수 해먹고. 하도 많이 먹어서.
우리 : 가게 이름에 손칼국수가 들어가 있는데? 처음엔 손으로 직접 하셨던거에요?
할머니 : 여기서 한 3년은 손으로 직접 밀어서 만들었지. 그런데 사람들이 이걸 하면 자기들도 거들어서 밀고 쓸어야 하는데, 힘든 거 안할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3년 정도만 손으로 했어.
우리 : 두부는 어디서 사다가 쓰세요?
할머니 : 중앙시장. 두부는 늘 한 집에서 사다 썼어. 우리는 단골이 안 바뀌어. 쌀도 그렇고, 야채도 처음부터 한 곳에서 사다 썼어.
우리 : 요새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안보이나요?
할머니 : 저 밑에나 바글바글하지. 근처는 많이 없어. 엄마 아버지가 사는 게 힘든데 젊은이들이 나와서 돈 쓰겄어? 안쓰지. 대학졸업하고 직장들어가는 것도 척척되고 해야되는데..그렇질 못하니..대학에서 어떤 과를 나와도 밖에서 전공을 못 써먹잖어.
우리 : 오래된 단골 손님도 많으시겠어요. 기억나시는 분들 있어요?
할머니 : 아까 중구청 직원들도 그렇고..우리가 은행동에서 가게할 때 오셨던 사람들이 잊지 않고 올때도 있어. 홍명상가에 살던 사람들. 홍명상가에 있는 짜장면집에서 짜장면 먹고 했던 게 기억나네..금산 사람인가가 했던 것 같은데. 젊은 손님들도 단골이 있어. 오면 장모님 장모님하고 그러지. 참 안희정지사도 우리 식당 왔었지. 배부르게 잡수고 '아유 맛있어요'하고 해주셨지. 참 말을 편안하게 해주더라고.
우리 : 기억나는 원도심의 풍경이 있다면요?
옛날에 예술하는 사람들, 작가들이 이 동네를 많이 찾았지. 붓글씨 하시는 분들고 계셨고. 목원대 교수, 충남대 교수들도 전시하러 이 동네로 오고 그랬어. 요새는 잘 안 보여. 경기가 어렵나봐. 지금은 그 사람들도 다 늙었겠지.. 그래도 요즘 이 동네 공감만세, 산호까페, 이런 데는 젊은이들이 재밌게 사는 것 같어. 산호다방, 산호여인숙도 예술가들이 많이 와서 좋고. 나도 가끔 다방에가서 동네사람하고 고스톱치고 놀아.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덧 큼지막한 두부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중구청 직원분들도 자리를 떴다. 이젠 두루치기 양념에 밥을 비벼먹거나 사리를 넣어 칼국수로 먹을 차례. 이게 또 별미였다. 우리는 사리를 넣기로 했다. 할머니는 바지락이 가득 담긴 칼국수를 가리키며 얼른 먹으라며 다그치셨다. 밥상 앞에 앉은 자녀들에게 말하듯 온정이 느껴졌다.
▲ 두부두루치기를 거의 다 먹었으면 이젠 면을 넣어 두루쳐 먹을 차례. 이 또한 별미다.
"바지락 많이 넣었어. 조개 다 발라먹어. 다 안 먹으면 다음부턴 많이 안 줄 줄 알어." 할머니의 으름장(?)에 동작이 빨라졌다. 그릇 바닥에 잠겨있던 바지락까지 꺼내 해치웠다. "원래 많이 안주는데 총각들이 이뻐서 더 주는거야. 이렇게 장사하며 젊은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듣고 하면 좋지." 졸지에 이날 모임에 나온 결혼한 사람도, 아닌 사람도 다 같이 젊은 총각들이 되었다. 다들 입꼬리에 즐거운 웃음이 흘렀다.
할머니는 어느새 또 자리를 떠서 뭔가를 내오셨다. 가족들 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건데 조금 먹어보란다. 후한 인심에 마음까지 풍성해졌다. 그러면서 하신 말이 또 걸작이었다. "우리 아들들만큼은 아닌데 아닌데..다 이뻐." 하하. 이 말에 모두 활짝 웃었다. 섭섭하지 않고 오히려 다들 기분이 좋았다.
우리들 가슴 속 원도심 추억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라
좋은 음식을 앞에 두니 저다마 가지고 있는 원도심의 추억도 흘러 나왔다. 한 분은 선화동 앞에서 자취했을 때 중앙시장 순대집에 가서 현재의 아내와 데이트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한 분은 쭈욱 늘어서 있던 정겨운 포장마차의 추억을 멀하며 젊은이들에게 그런 분위기를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할머니도 "포장마차같은 데에 가족이랑, 마누라랑 가서 먹으면 좋지. 사람들 떠들고 이야기하는 게 좋잖어."하며 추억을 거들었다.
▲ 사장님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원도심에 관한 추억을 풀어 놓았다.
수원식당을 찾는 다른 손님들도 저마다 원도심에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며 소주 한 잔 기울일 것이다. 두부두루치기를 먹을 땐, 이에 얽힌 추억을 가장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두부두루치기는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담겨 있는 대전의 향토음식이다. 80년 대부터 대전 시내의 두부두루치기 식당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바글바글했다. 배고픈 시절 술안주가 되기도 하고, 고픈 배를 달래주던 음식이었다. 지금도 대전시민들은 대전의 대표음식을 꼽을 때 두부두루치기를 빼놓지 않는다. 단순히 음식이 아닌 가슴속에 흐르는 소중한 추억이기에 대전사람들은 잊지 않고 꾸준히 찾는 게 아닐까.
이곳에 오면 가슴속 원도심의 추억도, 두부두루치기의 추억도 졸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두부두루치기의 유래에 대해 궁금해하더라, 미니토론(?)을 열더라
그러다 두부두루치기 원조가 어디인가하는 미니 토론(?)을 열기도 한다. 저 마다 신문이나 주변 사람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한바탕 두부두루치기의 유래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펼친다. 두부 두루치기 관련 기사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한 신문기사에 따르면 본래 두루치기 요리는 충청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제주도 등 다른 지방에서도 전해져 온단다. 전라도에서는 쇠고기, 내장 등을 재료로 하여 화려한 고명을 얹어 만들었지만, 충청도의 두루치기에는 반드시 두부가 들어가고 배추속대, 버섯, 호박고지 등을 볶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기자는 '두부두루치기'의 유래를 대흥동에 위치한 식당 '진로집'에서 찾고 있다. 1970년대에 진로집을 찾은 손님들이 주문을 할 때, "두부를 맛있게 매쳐라. 때려라. 매때려라. 두르쳐 내와봐라"라고 한데서 음식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 어쨌거나 바쁘다 바뻐. 다들 맛있게 잡수신다.
더불어 두부두루치기는 1950년대부터 계룡산 자락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단다. 당시 계룡산 자락 숨두부 마을에서 숨두부요리와 두부두루치기를 함께 팔았다는 것이다. 숨두부 요리는 두부가 응고되기 전 물속에 연하게 풀린 상태에서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간장 등의 양념장을 넣어 들이마시던 음식이었다.이때 두부와 쇠고기, 쇠간, 무, 배추속대, 버섯, 호박고지를 함께 볶아서 함께 내놓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두부 두루치기 요리였다는 이야기다.
두부두루치기는 이렇듯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혹시나 정확한 두부두루치기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이 계시면 제보 바란다. 참, 수원식당 할머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쭈어 볼 걸 그랬다. 성함도 못 물어봤다. 나란 녀석도 참. 하하.
어쨌거나 대전 향토음식 두부두루치기! 추억, 사람들과 함께하니 맛나네
어쨌거나 대전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두부두루치기를 집어 올리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소주잔을 부딪히며 오랜 추억을 나누고, 다시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오늘의 시름을 함께 내려 놓는다.
이날 좋은 사람들과 두부두루치기를 참 맛있게 먹었다. 자취생이어서 어떤 음식인들 안맛있겠느냐만은. 하하. 배고픈 자취생의 '뭐든 맛있다'는 타령만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분들에게도 물어봤더니 '여기 두부두루치기가 맛있다' 는 답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며 먹었기에 맛있었다. 게다가 주인 할머니의 오랜 손맛과 넉넉한 인심이 더해졌으니 금상첨화!
다음엔 오징어 두루치기도 먹고, 두부두루치기로 유명한 진로집, 별난집 등도 한 번 들려봐야겠다. 또 대전에 고향친구들이 놀러오면 꼭 한 번 소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들아! 두부두루치기하고 소주 내가 쏠게' 자신있게 외치면서 말이다. 이 날도 나의 배는 외계인 E.T처럼 봉긋하게 솟아올라 달을 바라보았다. 중앙로역까지 걸어가며 배를 쓰담쓰담하며 행복에 젖었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더니 두부두루치기를 담은 쟁반이 둥그렇게 보름달처럼 떴다.
두,,,루,,,치....기..입술로 단어를 꼼지락 거렸다.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전 원도심의 많은 식당들.
부디 다시 부흥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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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 난로위에 있던 돈데코만(?)주전자. 원도심 추억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해줄 것 만 같았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시는 서비님. 사장님께서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셨다.
두부두루치기뿐만 아니라 오징어 두루치기, 제육, 칼국수 등도 있다.
'수원식당'으로 흔히 부르지만, 식당 간판은 '수원 손칼국수'로 되어 있다.
식당 밖 풍경.
모두들 푸짐하게 먹고 나와 식당을 나섰다.
1. 이 글을 읽고 혹시나 잘못된 점이 있거나 두부두루치기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댓글에 제보해 주시길 바랍니다.^^
2.네이버까페 '대전의 맛집멋집 : http://cafe.naver.com/nyamnyam/'에 가면 더 많은 맛집멋집 이야기들이 정답게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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