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에 열린 라푸마 둔산점 여행콘서트 후기입니다. 사진은 이재형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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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광아 우리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서 스노우보드 타고 내려가 보자."
익스트림 스노우보더 김은광 씨는 친구가 툭 던진 농담이 진짜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그가 14일 대전 서구 라푸마 둔산점에서 열린 여행콘서트에서 극한에 도전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겉모습은 이종격투기 선수 같지만,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운 그는 자신을 '똘아이'라 소개했다.
어느 익스트림 스노우보더의 미친 짓
그의 도전사를 들으면 히말라야의 아찔한 빙벽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는 2001년 히말라야 로체(8614m)의 7000m 부근에서 세계최초로 스노우보드를 타고 활강했다. 2002년에는 북미 최고봉 알래스카 메킨리(6194m)에서도 세계최초로 스노우보드를 타고 내려왔다. 주변 사람 모두 미쳤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창피했다면 해드릴 이야기가 없었겠죠. 그런데 살면서 무언가에 미쳤다는 소리를 한번쯤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과감한 도전은 2003년 고(故) 박영석 대장 등 5명의 대원과 함께 떠난 북극 원정길에서도 계속됐다. 당시 원정대는 140kg이 넘는 썰매를 끌고 72일 만에 북극점에 도달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북극은 영하 50℃를 넘나드는 혹독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북극에서 오줌통을 껴안고 잔 사연
“그런 기온에서 잠이 들면 감으면 동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죠. 침낭을 뒤집어쓰고 끝까지 버티는 거죠.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욕하는 거였어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욕이 정확하게 맞아요. 하하하."
영하 50℃ 밑으로 내려가는 날에는 동상에 걸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때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오줌통은 구세주였다.
"영하 50℃ 이하까지 내려갈 때 오줌통을 껴안고 있으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죠. 한 번은 오줌을 병에 한 가득 채우는 동료 대원이 부러웠죠.”
아. 오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눈물겨웠다.
“썰매를 끌고 하루 평균 18시간씩 매일 걸었어요. 사람이 위대한 게 북극에서 썰매 끌다 보면 혹한의 기온에서도 사람 몸에 땀이 나요. 그 땀이 얼음으로 변해있어요.”
침을 꿀꺽하자 커다란 얼음조각이 삼켜지는 듯 했다. 귓속에는 고드름이 달리는 것 같기도.
실패 아닌 실패, 북극에서 깨달은 것
그런데 북극 원정은 실패로 끝났을까. 성공으로 끝났을까. 김은광 씨의 표정은 잠시 어두워졌다.
“북극점 원정은 실패였죠. 60여 일 동안 인내하고 나 자신과 싸우며 도전했는데. 왜 실패했을까. 인정할 수 없었어요. 한동안 멍했죠.”
그와 동료들은 구조 헬기를 타고 북극을 떠나며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다. 그러나 북극 원정의 과정에서 뼛속 깊이 깨달은 게 있었다. 먹을 것, 희망, 가족의 소중함. 평상시라면 모두 가까이 두고 그 소중함을 알아채기 어려운 것들이다.
“북극에서의 희망이란 챙겨간 코코아와 초콜릿 바였죠. 북극에 오기 전에는 내 눈앞에 있는 먹을 것이 있다는 게 그렇게 소중할 줄 몰랐어요.”
아들아, 나는 네가 팔 다리가 없어도 된다
또 하나의 희망은 가족이었다.
“평상시에는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을 안 하다가도 이곳에서는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매일 가슴속으로 들어와요.”
당시 그는 살아서 가족을 만나자는 생각에 버티고 버텼다. 그의 어머니는 신문을 통해 얼음물에 빠진 아들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은광아, 우리는 가족이 아니냐. 나는 네가 손이 없어도 되고, 다리가 없어도 되니까 제발 이 엄마한테 사실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면 안되겠느냐.”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라푸마 둔산점에 전해졌다. 몇몇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볼품없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 마음속에 희망으로 자리 잡을 때는 극한의 한계를 참을 수 있게 하는 어마어마한 힘이 됩니다.”
진정한 도전이란
김은광 씨가 갑자기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목이 메었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사랑하는 동료. 2003년 함께 북극 원정을 떠났던 희준이, 막내 현조. 박영석 대장. 서로 목숨을 의지하고 이곳에서 만큼은 살아있어야 한다며 부둥켜안았던 제 동료들. 지금은 모두 이 세상에 없어요.”
순간 숙연해지고, 사람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도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를 기다리고 응원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동시에 행복감을 전해줄 수 있어야 그게 올바른 도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게 하면 진정한 도전이 아니라고.”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꿈도 바뀌었다고.
“10년여 년 전 이 세상이 가보지 못한 산꼭대기를 올라가서 스노우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제 삶의 목표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제일 큰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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