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게심니는 집 안, 안채 대청마루 기둥에 걸려 있던 그 무엇이다. 옛 사람들은 집 안에 곧잘 무언가 물건 가지를 앉혀 두거나 모셔 두거나 또는 걸어 두곤 했는데, 올게심니도 그중 하나다. 음력 그믐날 쳇바퀴가 걸리곤 했던 그 기둥 자리에, 옛날 같으면 올게심니가 집집마다 거의 빠짐없이 걸려 있었다. 그것도 여보란 듯이 매우 높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아니, 섬겨지고 모셔지고 있었다고 하는 게 더 옳겠다.
벼를 비롯해 조, 수수 등의 곡식을 목 베어다가 엮어놓은 것이 다름 아닌, 올게심니였다. 물론 예사 낟알을 달아놓았던 건 아니다. 논 전체를 두고, 또는 밭뙈기 전체를 두고 가장 잘 여물고 가장 잘 익은 곡식알이 붙은 이삭이라야 비로소 올게심니가 될 자격이 있었다.
(중략)왜 그랬을까? 이를테면 '곡물 숭배' 같은 것이었을까? 곡물을 신주처럼 모시기 위해 그랬을까? 물론 그런 면도 있었다. 옛날 사람들, 특히 농사꾼들은 '곡령'이 있다고들 믿었다. 곡식 낟알 안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 탓에 곡식자체가 아예 신앙의 대상이 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것이다. 당연히 높은 곳에 받을어 섬겨야 했던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올게심니에 곡령이 깃들어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은 것이다."
-85~86쪽, 이젠 없는 것들, 김열규-
우리 조상들은 올게심니를 걸어놓아 풍년을 빌었다고 한다. 곡식을 옳게 심자는 뜻이 담겨있는 것인가. 옳게 심자, 옮게심니,올게심니. 이렇게 단어 모양이 변한 것일까.
내 주변에 이젠 없는 것들은 많다. 크레파스와 도화지가 없다. 실내화 가방과 점보 지우개가 없다. 그림일기장과 색연필이 없다. 수능시험성적표와 낙서 가득한 교과서도 없다. 옛것이 아니라도 각자에 '이젠 없는 것들'이 있다.
사라지고, 사라지는. 물건, 사람, 풍경, 가치, 옛날.
마당, 바자울, 안채, 아랫목, 아궁이, 나루와 나룻배, 서낭당, 외양간. 점점 사라져간다. 뱃살은 축 늘어지고, 시계바늘은 밤기차 아기 뽀얀 볼에서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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