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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시인, 박용래.
나는 가슴 답답할 때 하늘을 본다. 바다를 보러가고 싶다. 하루종일 잠잔다.
시인 박용래는 마른 논에 고인 물을 들여다본다.
맘 천근 시름겨울 때. 천근 맘 시름에 겨울 때 말이다.
구름도 떠다니고, 새 한 마리도 날고, 햇살도 출렁이고, 흙더미 고운살도 보이고.
마른 논에 고인 물.
쩍쩍 갈라진 가슴에 비치는 슬픔.
축 쳐진 꿈, 뱃살. 지방.
시인 박용래는 어느 날 메모를 남겼다.
'내 시의 행간은 버들붕어가 일으키는 수맥(水脈)이어야겠다'라고.
겨울밤, 맹독을 가진 뱀처럼 차가운 이빨을 살갗에 꽂는 추위, 너란 녀석.ㅁ
맘 천근 시름겨울 때
천근 맘 시름겨울 때
마른 논에 고인 물
보러 가자.
고인 물에 얼비치는
쑥부쟁이
염소 한 마리
몇 점의 구름
홍안(紅顔)의 소년같이
보러 가자
함지박 아낙네 지나가고
어지러이 메까치 우짖는 버드나무
길.
마른 논에 고인 물.
그 봄비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저녁 눈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문득 끄적인다.
마른 눈에 고인 물, 마른 논에 고인 물.
마른 땅에 고인 돌, 마른 땅에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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