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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2017 독서노트(26)김훈의 <공터에서>, 밑줄 그은 문장

by 이야기캐는광부 2017.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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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세상에서 몸 하나 비빌 대를 찾고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호롱불조차 켤 수 없는 마음은 캄캄할 까. 환할까.  삶은 개별적이다. 힘들었겠다. 힘들다. 이 두 표현 사이에서 서로의 삶을 위로한다. 김훈의 장편소설 <공터에서>를 읽으며 엄습한 생각이다.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삶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노새나 말, 낙타처럼 먼 길을 가는 짐승 한 마리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얼씬거리다가 그 너머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이 세상이 다시는 지분덕거릴 수 없는 자리고 건너갔다는 것은 어쨌든 아버지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막상 죽음의 소식을 받고 보니 아버지가 건너간 자리는 아주 가까워서 아버지는 가지 않고 다시 이쪽으로 건너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땅 위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고 헤매이게 되는 생애의 고통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소멸할 것이고 그 고통이 아무리 크고 깊다 한들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못할 것이므로 아버지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이 휴- 하고 긴 한 숨을 한 번 내쉼으로써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기도 했지만, 그 한숨 한 번 내쉬기까지가 어째서 그토록 힘든 일이었을까를 마장세는 생각했는데 생각이 되어지지가 않았다.

-140~141쪽-

배가 고프면 눈을 가늘게 뜨게 되는데, 눈거풀이 떨려서 세상이 흔들렸고 가까운 것들이 멀어 보였다. 배가 고프면 후각이 민감해져서 거리의 사람 냄새나 물이 오르는 가로수의 풋내가 코끝에 어른거렸다. 배가 고프면 배고픔이 몸속에 가득 차면서도 몸이 비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음식 냄새가 코를 스치면 배고픔은 창끝처럼 뾰족해져서 창자를 찔렀다. 배가 고프면 마음이 비어서 휑했고, 그 빈 마음속에 배고픔이 스며 있었다. 배고픈 저녁에 마장세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배고픔은 노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가 고프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맛의 헛것이 빈 마음에 번져 있었다. 풀빵은 너무 멀게서 깨물면 속이 흘러내렸다. 마장세는 풀빵을 먹을 때 입을 위로 치켜들고 흘러나오는 내용물을 빨아먹었다. 풀빵은 멀겠지만 온기가 배 속으로 퍼졌다. 온도도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마장세는 풀빵을 먹으면서 알았다. 온도는 배가 부르지는 않았고 온도가 배 속으로 퍼지면 메마른 창자가 꿈틀거리면서 창자는 더욱 맹렬히 건더기를 요구했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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